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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PBC]7월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독서 복음묵상
작성자조한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7-08 조회수2,981 추천수2 반대(0) 신고
기쁜 소식. 밝은 세상

 

[PBC라디오 기쁜소식 밝은세상]

7월 15일 목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독서묵상

모세는 여러 신을 섬기는 에집트 궁전에서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모로부터 아브라함과 약속을 맺으신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자랐지요. 모세가 청년이 되어서는 그는 항상 그의 가슴에 유일신에 대한 생각이 불타고 있음을 느꼈답니다.

 

드디어 그가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모세는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는 나로다."

"나는 나 스스로 있는 자로다."

 

'한갓 피조물인 인간이 어떻게 그를 내신 하느님을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우리가 하느님은 뭐라고 말하면, 이미 하느님은 그러한 규정을 초월해 계시던 분이아니시던가.'

하느님은 인간이 뭐라고 정의하고 규정하는 것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는 것과 상관없이 '나는 나이신 분이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라'고 하십니다. 다른 나라 신들이 사람들이 결정해 준 것에 따라 좌지우지 하지만,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사람들의 대접과 상관없이 스스로 나이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에집트로 가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말하라고 하시지요. 이 말씀을 아브라함과 함께 해주셨고, 이사악과 함께 해주셨고, 야곱과 함께 해주셨던 하느님이, 이제는 너희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신데요. 이 말씀에는 하느님께서는 영원히 그들과 함께 살아계시는 분이시라는 뜻이 담겨있답니다.

이런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살이의 고역을 똑똑히 보시고 그들을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기로 하셨다는 거지요. 모세가 파라오에게 가서 전한 요구는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이 우리에게 나타났으니, 우리는 산으로 가서 그분에게 예배를 드려야 하겠소." 였는데요. 파라오를 신으로 섬기는 에집트 왕 파라오에게 이보다 더 도전적인 말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노예생활에서 해방이었던 출애급은, 에집트 신 파라오에게 히브리인들이 자신들이 진정으로 섬기는 유일신을 자유롭게 섬기는 곳으로 떠나게 해 달라는 당당한 요구였답니다. 그들은 육체의 해방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해방까지 원했답니다.

 

복음묵상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히브리인들이 에집트에서 종살이에서 겪고 있는 일을 똑똑하게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지금도 백성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고, 에집트인들이 그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이 보인다."는 말씀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느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드러내 보이셨답니다.

하느님은 고생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와, 그들의 고통받는 모습을 내 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거지요. 약하고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을 보시고, 그들을 그 고역으로부터 풀려나게 하시고 싶으신 하느님의 마음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 시대도 모세의 시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지요.

로마의 식민지 상황이었으니까요.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로마의 식민지 정책 때문에 종교의 자유와 문화적인 풍습과 습관들은 어느 정도 자유로웠지만, 대다수의 서민들은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농노나 소작인들이었다고하니까요. 이들은 유다인 인구의 80%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지도자들이 짊어지우는 종교적이 부담감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하는데요.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답니다.

왜 그랬던 걸까요?

 

오늘 복음 말씀은 이 대목을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걸로 만족해야 하고, 종교적 의무를 다 할 수 없어서 늘 위축되어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편안함을 얻을 수 있었고,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고생하면서 사는 걸 알아주셨고,그들의 속사정을 다 알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젼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었지요.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젼의 세계에서,고생하는 그들의 삶에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었고, 마음 적으로 무겁게 짓누루고 있던 짐들을 벗어 놓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답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우리들을 짓누르고 있는 짐들을 생각해 봅니다.

어떤 이들은 먹고 살 일이 걱정이고,

어떤 이들은 건강이나 사업이 걱정이고,

어떤 이들은 가정이나 직장이 걱정이고............

예수님, 우리들은 참 많은 걱정과 부담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걱정과 부담들이 우리의 삶을 질식시키고, 마음을 짓누를 때도 많지요.

그럴 때 우리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고생하고 무거운 짐에 허덕이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았듯이 말입니다.

예수님, 당신을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보여주시는 비젼의 세계에서 그들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도 우리의 고생과 마음의 짐들을 당신께서 보여주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젼 안에서 바라보게 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이 무겁게 지고 있는 마음의 짐들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비젼으로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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