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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작성자박선환 쪽지 캡슐 작성일1999-07-10 조회수3,357 추천수7 반대(0) 신고

                                연중 제15주일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이사 55,10-11; 로마 8,18-23; 마태 13,1-23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라는 제목을 갖습니다. 뿌릴 씨와 농부 그리

고 땅, 그 모든 것들은 농사 짓는데 있어서 아주 소중한 것들입니다. 복음의 내

용을 통해서 [하느님은 농부이시다] 라고 했던 어느 신앙인의 고백이 생각났습니

다. 복음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 농사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농촌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습니다. 안동 교구에 있는 교우촌으로

갔었는데 그 곳에서 생전 처음 농사라고 하는 것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갔

던 곳은 주로 담배 농사를 짓는 고장이었습니다. 틀림없이 봄에 심었을 담배 줄

기에 커다란 담뱃잎이 달려 있었고, 키보다도 훨씬 웃자란 담뱃잎 사이를 오가며

잎을 따자니 원초적 사우나가 따로 없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밥을 지어먹고, 일손을 필요로 하는 집에서 우리들을 데리

러 오면 우리들은 삼삼오오 짝을 져서 그 날 일할 장소로 가곤 했습니다.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경운기를 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새파란 담뱃잎이

부채 춤추는 담배 밭이 나타납니다. 농촌의 여름 햇살은 일찍부터 시작되는지 아

직은 이른 시간이었어도 늘 더위에 목이 탔습니다. 밭주인들은 막걸리와 돼지비

계 볶은 안주나 배추 부침개를  준비해서 컬컬해진 목을 축이도록 했습니다. 막

걸리 한 사발로 든든해진 배에 힘을 주면서 일을 하다보면 한 시간이 뚝딱이었습

니다. 담배 잎을 따고, 집으로 가져와서 발로 엮고, 건조기 속에 집어넣어 건조

를 시키는 작업을 끝내고 나면 어느새 하루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공소 건물로 돌아와서 저녁을 지어먹고, 저희들을 찾아오는 학생

들과 함께 교리공부도 하고, 놀이도 하며 초저녁을 지냈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잠이 찾아올 무렵, 어른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거나 무릎베개를 만들어 재운다음, 농사일과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이

야기, 그리고 신앙 생활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늦게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

은 여물지 않았던 신학생이었지만 뭔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뿌듯함으로 그 해 여름이 짧게만 느껴졌었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어른들과 나눴던 얘기 가운데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그분

들은 농사가 무엇인지를 아주 소상하게 아는 분들이셨습니다. 말 그대로 농부들

이셨지요. 그분들이 농촌에 사시면서 가장 걱정하시는 부분이 바로 자식들 교육

문제였습니다. 그분들의 표현대로 한다면 자식 농삽니다. 작물을 길러내는 데에

도 많은 공과 노력이 들지만, 사람을 길러내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는 뜻으

로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특히 대부분이 신앙인이었던 마을에서 신부님도 수녀님

도 안 계시는 공소 하나만 지키고 있었기에 아이들의 신앙교육과 인간교육에 대

한 걱정은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었습니다.

 

읍내까지 나가려면 자전거로 30분 이상을 달려야 하고, 주일미사에 참례하려고

해도 그 정도는 예사였습니다. 주중에는 아이들 대부분이 통학을 하거나 읍내에

서 학교를 다니다가 주말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또다시 읍내까지 가서 미

사에 참여하라고 하면 싫다고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럼에도 마을 어른들께서는

아이들을 달래고 얼러서 미사만큼은 꼭 참석하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습

니다.

 

그로부터 약 10년쯤 지난 어느 날 어느 수녀원에 미사를 다녀왔다는 동창 신부

하나가 농활시절 함께 지냈던 학생 하나가 지금은 수녀님이 되어서 어느 수녀원

에 있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수녀님을 직접 찾아가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어른들께서 정말 걱정해주시고, 보살펴주시니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우리들

에게 시사하는바가 큽니다. 흙이 있다고 다 좋은 땅이 아니라 어떤 흙이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됩니다. 양분이 충분한 기름진 땅인지, 뿌리 내리지 못할 자갈

과 거친 흙으로 되어 있는지, 가시덤불을 비롯해서 식물 생장에 방해가 되는 것

들로 가득찬 곳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복음에 의하면 씨뿌리는 농부는 하느님이시고, 씨는 하느님의 말씀을 의미합니

다. 그리고 이 씨앗을 받아들이는 땅은 바로 말씀을 들어야하는 우리들 자신입니

다. 땅인 우리들은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일구시는 대로 우리들 자신을 하느님 아

버지께 내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막의 황폐한 땅도 수로공사를 잘 하고 나면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는 옥토로 변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가시

덤불도 그 덤불들을 뿌리째 잘라내고 잘 갈아내고 좋은 흙으로 객토를 하고 나면

좋은 흙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많은 공

과 노력이 필요한 이 일에 적극적으로 매달리지 않을 때 우리들은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지금이 땅에 퇴비를 주어야할 때인지, 씨앗을 뿌려야하는

지, 혹은 물을 주고 햇볕을 막아줘야 하는지, 그리고 수확을 해야하는지를 잘 알

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농부이신 하

느님께 우리들의 모든 것을 맡기고 믿는 마음으로 주님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침 촉촉한 비가 내려서 우리들 몸과 마음이 한결 시원해졌습니다. 우리들은 지

금 내 마음속에 뿌려진 밭에서 무엇을 만들고 있습니까? 언제까지라도 섞지 않을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요?

 

선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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