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20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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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7-15 | 조회수2,58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7월 20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독서묵상 모세를 따라 에집트를 나온 히브리인들은 홍해에 빠져 죽든, 에집트 기병의 말발굽에 짓밟혀 죽든지, 이 두 가지의 선택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히브리인들은 바로 이 순간 하느님의 절대적인 구원의 힘이 그들을 구해주는 걸 체험하게 됩니다. 썰물이 되어 바다가 갈라지고 바닷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짐이 가벼웠던 히브리인들은 바닷길을 걸어 홍해를 건너갔지만, 에집트 기병들은 바다에 들어서자 마자 진흙 펄에 빠져 꼼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답니다. 에집트 기병들이 진흙 펄에 빠져 쩔쩔매고 있는 동안, 다시 바닷물이 들어오고 에집트의 자랑인 기병들은 군마와 마차와 함께 순식간에 바닷물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지요. 홍해를 건넌 사건은 히브리인들이 하느님을 굳게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이 힘이 완전히 무력하다는 걸 인정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구원의 힘이 자신들을 구원하는 걸 보게 되었답니다. 어떤 소모임에서 한 젊은 부인도 이와 비슷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요. 부인은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이야기하였답니다. "우리는 불행에 헤매고 있는 남편이나 혹은 가족 중에 누구를 내 힘으로 구해낼 수 있다고 자만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우리들은 열심히 자신의 뜻대로 그 사람을 조정하려고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자신마저 그 사람에게 휘말리게 되고 불행해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무력함을 완전히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들은 그들을 내 뜻대로 조정하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게 되고, 하느님께 문제를 맡길 때 비로소 위대하신 신은 그분의 힘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할 때는 그분이 움직이실 이유가 없었던 거였지요. 위대하신 신은 가만 기다리고 계시다가, 우리들이 무력함을 인정하고 모든 문제를 신께 맡겨 드릴 때 당신이 활동하시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때 하느님께서 바닷길을 여시면 우리들은 그 길을 건너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복음묵상 지금의 생활을 버리고 혹시 다른 생활을 시작하고자 할 때, 지장이 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요? 대부분 우리들은 아마 가족이라고 말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혹은 부모나 형제 자매들 걱정이 되어서 집 떠나기가 어려운데요. 가정을 가진 후에는 더욱더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와 같이 대가족이 핵심을 이루는 시대에서는, 가족이라는 끈이 더 탄탄하던 때였는데요. 그런 사회에서는 가족의 체면이나 가족에 대한 의무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되었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족에 대한 체면이나 의무를 버리고, 떠돌아다니면서 죄인이라고 정평난 사람들과 사귀었으니,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이 어떠했을까요? 아마 그런 예수님을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을 것이고,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 왔을 겁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와 가족이 대립되었을 때, 예수님의 입장은 단호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어쩜 냉혹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단 이기주의의 최소단위인 가족관계를 끊어버리지 않고서는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관계가 생겨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어쩜 예수님이 먼저 혈연적인 가족관계를 끊어버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도 후에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의 운동에 있어서 핵심 인물들이 되었던 점을 묵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혈연적인 가족관계를 끊어 버림으로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더 크고 넓은 범위의 하느님 나라의 가족관계에 들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떠나온 가족들도 하느님 나라의 가족 관계로 안내하고서 말입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당신은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드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중심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형제 자매가 되는 그런 가족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가족이 되면,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아버지 아래에서 모두 형제 자매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저희들은 아직도 여전히 가족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내 가족만을 위하고, 내 가족만 괜찮으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 가족 이기주의를 끊어버리는 것은 그 순간 어렵고 고통이 따를 지 모르지만, 더 넓고 길게 본다면 그것은 가족과 집안을 하느님 나라의 큰 가족 안으로 인도하는 길이기도 하지요. 예수님, 저희들이 하느님 나라의 안목으로 우리의 가족 관계를 다시 성찰해 보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하느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는 저희들이 서로 형제 자매적인 사랑으로 살게 하여 주시고,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일에 서로 연대를 이루게 하여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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