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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밭에 묻힌 보물]
작성자박선환 쪽지 캡슐 작성일1999-07-24 조회수3,969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17주일

                             <밭에 묻힌 보물>

          1열왕 3,5.7-12; 로마 8,28-30; 마태 13,44-46(혹은 44-52)

 

  외국에 다녀온 선배 한 명이 있었는데, 다녀온 곳은 뉴질랜드였습니다. 약 1년 여 동안 현지에서 생활을 했었는데

 

그 곳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양이 많고, 방목을 하는 것과, 아름다운 자연과, 또 한가지는 그 나라

 

사람들이 복권을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이해가 갔지만, 사람들이 복권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나라 사람들은 가게에서 쉽게 복권을 구입할 수가 있는데, 우리 나라의 즉석

 

복권처럼 가려진 부분을 동전으로 긁어서 즉시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어서 아이들,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심지어는 수녀님들까지도 가게에서 복권을 긁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는 비슷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적은 돈을 투자해서 일확천금의 당첨이 자신에게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게 만드는 것이죠. 언젠가 한 번 즉석 복권을 사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긁을 때마다 이천 원, 오천 원, 오 백원, 만원 등의 당첨금이 나와서 [와! 이러다가 사고치는거 아닌가?] 걱정을

 

했었는데, 결국에는 당첨금 전액을 복권 사는데 써버리고 말았지요.^^ 복권을 사면서 정말로 당첨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누군가는 항상 당첨되기 마련입니다. 복권을 사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이 아니라는게 항상

 

아쉬울 겁니다.

 

  얼마전에 신문을 읽다가 놀라운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새벽마다 남의 집 쓰레기를 치우던 아주머니가 새벽

 

청소를 나오셨다가 작은 손가방 하나를 주웠는데, 그 속에는 자그마치 4천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돈을 보는 순간 세어보지도 못하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머뭇거리다가, [맘이 변하기 전에 빨리

 

경찰서로 가자!]고 다짐하고 무조건 가까운 경찰서에 가방을 맡겼답니다. 돈의 주인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자업자였는데 공장 운영 대금을 들고 가다가 잃어버렸다는 후문이었습니다.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양심만은

 

자유로웠던 아주머니의 얘기였습니다. 우리들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복음을 보면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을 파다가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남의 밭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삯을 받고

 

일하는 날품팔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은행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재력이 되는

 

사람들은 값진 물건들을 밭에 묻어두는 습관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날품팔이꾼이 남의 밭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묻힌

 

보물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보물을 묻어두고 돌아가서 그 밭을

 

사들이게 됩니다. 여유가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그 밭을 사려고 들었을 겁니다. 우리들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복음에서는 거론하지 않지만, 밭을 산 사람의 도덕성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보물 자체는 이 사람이

 

찾아내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발견한 사람은 날품팔이였지만, 원래 소유는 그 밭의 원주인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쓰레기를 치우던 아주머니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가 생각이 나는군요.^^)

 

  보물이 그 사람이 찾아내기 전부터 그 곳에 있었다는 점은 하느님 나라가 갖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 현존하고, 복음전파를 통해서 수중에 넣을 수도 있지요. 우리가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우연하게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가 무상으로 주어지는 선물과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사람은 좋아라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모조리 팔아 밭을 샀습니다. 일단 밭에다 안전하게

 

감추어 둔 보물은 사람들이 출처를 의심할까봐 다시 파내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다 팔아치운 덕분에 그

 

보물을 손에 넣기는 했지만 형편은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집니다. 처리하지도 못하고 엄청난 보물을 수중에 넣고만

 

있는 셈입니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선물로 부여되지만 우리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선물을 받을 때 필수적인 요건 하나는 그것을 남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특히 우리가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려 들 때 우리는 어떤 형태든 추문에 휘말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가 벌어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귀한 보물처럼 우리에게 오는 까닭에 우리는 힘껏

 

노력해서 얻었을 때처럼 그것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마치 복권을 사는 사람이 큰 노력을 들이지도

 

않고 일확천금의 꿈을 잠시나마 꿀 수 있듯이, 무상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선물도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칫 복권과 같은 정서로 이해되어지는 실수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풍성한 은총을 무상으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해야 할 책임마저 지나쳐버림으로써 물의를 빚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에 따르는 위험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라는 보화를 구태여 찾지 않아도 얻는다는 데 있습니다]

 

(토마스 키팅).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고, 그 보화는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좋은 것도 이와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복음에서 보물을 캐낸 사람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마치 자신의 것인양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선물은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때 더욱 확장되고 커질 수

 

있습니다. 이 나라는 하느님이 아무래도 우리의 삶이나 기도 속에는 계시지 않는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을

 

없애줍니다. 신앙은 기도의 심리적 체험과 일상생활의 기복 속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 속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해서 서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거대하지만 무상으로 부여되는 이 선물에 응답하자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만일 우리가 무슨 실수를 저지를 경우,

 

설령 그것이 일생일대의 대실수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일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결백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용서와 자비를 보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드러내 보이고 있는 아버지는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과, 실패하는

 

우리를 다시 거두어들이는 일에 결코 싫증을 느낄 줄 모르는 분이십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묻힌 보물처럼 우연하게 발견되기도 하지만,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듯 복음을 찾고 주님을

 

만나려는 우리의 열망은 우리들 사이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멘.

 

<이번 묵상은 (토마스 키팅 지음/성찬성 옮김,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바오로 딸, 1998년)

이 책의 견해를 많이 참고서 작성되었습니다.>

 

선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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