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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30일 독서 복음묵상
작성자조한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7-27 조회수2,882 추천수1 반대(0) 신고
기쁜 소식. 밝은 세상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독서묵상

우리의 생활은 긴 일상에 축제가 사이, 사이에 끼여있습니다.

축제를 통해서 일상의 긴장도 풀고, 먹고 놀면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되지요.

우리나라는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과 추수와 관계된 추석을 가장 큰 명절로 지내는데요.

그리스도교 문화를 이루는 서양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축제와 추수감사제를 가장 크게 지낸다고 합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축제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축제는 에집트의 탈출과 광야 생활이 핵심주제를 이루고 있답니다.

노예생활에서 해방과 광야에서 하느님 백성으로 단련 받은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그들 축제의 주제였답니다.

따라서 에집트를 탈출한 사건을 기념하는 과월절 축제가 가장 컸는데요.

과월절을 지내면, 바로 이어서 일주일간 누룩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 축제를 보내게 된답니다.

과월절 축제를 지내기 위한 정결례를 과월절 앞에 일주일간 지내야 하니까, 과월절과 무교절 축제는 보름간 계속되지요.

이 축제는 에집트 노예생활로부터 해방과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축제입니다.

다음으로 큰 축제는 초막절인데요.

초막절은 추수 감사제이지요.

추수에 대한 감사와 광야 생활이 함께 결합된 것 같은데요.

추수가 끝나 가는 칠월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에 텐트를 치고 일주일간을 들에서 보내야 했지요.

들에서 지내면서 번제물과 곡식예물과 친교제물을 바치면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답니다.

이스라엘의 축제는 이처럼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느님과 현재에도 계속해서 먹을 것을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는데요.

우리들은 어떤 축제들을 지내고 있을까요?

교회의 전례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먹여주시는 하느님을 기억하는 축제인데요.

우리들은 과연 축제를 축제답게 지냈을까요?

복음묵상

예수님은 처음에 요한의 세례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광야로 갔답니다.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생활을 하시는 동안,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셨지요.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생각은 요한의 세례운동과 달랐답니다.

요한은 종말의 임박을 예언했지요.

종말이 닥쳤으니, 종말에 오기로 되어 있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회개의 표지로서 세례를 받으라고 했지요.

하지만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느님 나라는 종말에 오는 세상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깨달으신 하느님 나라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갈릴레아로 다시 돌아 오셨지요.

갈릴레아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시면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고,

사람들과 어울리시면서 하느님 나라의 징표들을 보여주셨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죄인들과 어울리시면서 하느님 나라가 지금 이곳에 출현했음을 축제하셨지요.

물론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도 찾아 가셨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출신배경과 예수님의 과거가 뇌리에 박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고향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깨달음을 얻으신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예수님이 누군가를 알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고향 분들은 특히 예수님의 출신 배경을 가지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왜 갑자기 그렇게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이 되셨는가에만 호기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예수님에 대한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들도 흔히 목격하는 경험이 아닐까요?

우리 자신들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면서,

그리고 우리 역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진면목을 외면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였지만,

정작 당신의 고향 사람들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신의 고향 사람들은 사회적인 기준에서만 당신을 보았기 때문이었지요.

당신의 출신 배경, 당신의 학력, 당신의 성장과정과 직업들을 통해 당신을 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희들이 고향사람들을 그런 기준으로 판단하듯 말입니다.

예수님, 사람은 나날이 변화가 가능한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통염적으로 하듯,

출신배경이나 학벌, 직업에 따라 판단하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그보다 사람의 됨됨이와 그 사람의 정신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저희들이 사람을 만날 때, 선입견이나 과거에 알고 있던 면에 집착하지 말고, 새롭게 오늘은 오늘의 사람으로 만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저희들이 당신을 만날 때도 어제 만난 당신에 얽매이지 말고,

매순간 새롭게 다가오는 당신을 만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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