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뻥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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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7-31 | 조회수3,515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연중 제18주일 <뻥튀기> 이사 55,1-3; 로마 8,35.37-39; 마태 14,13-21
흥부네 식구들은 제비 다리 하나를 고쳐줌으로써 세상에서 더 바랄 것 없는 보 화와 행복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던 대다수의 백 성들에게 흥부전은 착한 마음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도 않은 복 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상선벌악의 교훈을 알려 주는 고대소설입니다.
흥부전 생각을 하면 흥부네 집에서 박 타는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금은보화와 많은 시종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소위 클라이맥스 아니겠습니까? 어 릴 쩍에는 날아가는 제비를 바라보면서 [제비야, 제발 우리 집에 떨어져라. 내가 치료해주마] 하면서 흥부가 얻었던 그 복을 나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기회를 기 다리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마음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 람들의 정서를 보면 참새 떼는 쫓아내도 집안에 둥지를 트는 제비를 쫓아냈다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마음속에 슬근슬근 박을 탈 때 거기서 쏟아졌 던 그 많은 금은보화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는 아니었는지요? ^^
흥부는 놀부와는 달리 형제가 달라는 대로 나누어 줄 줄을 알았습니다. 그 흥부는 자기 형수로부터 밥주걱으로 뺨을 맞자 반대 뺨도 때려달라고 청했던 인물입니 다. 흥부는 자신이 잘못을 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도 아니었고,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더욱 아 니었습니다. 다만 더 많은 밥풀이 자신의 뺨에 붙어주기만을 바라는 소박한 마음 이었던 것입니다. 밥 구경을 할 수만 있다면 뺨이 아픈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아 도 좋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던 때문이었습니다.
뻥튀기라는 기계에는 쌀을 넣어도 되고, 보리를 넣어도 됩니다. 혹은 누룽지를 넣어도 되고, 가래떡을 넣기도 하지요. 무엇을 넣던지 아저씨가 10여 분을 돌리 기만 하면 2∼3배로 커진 뻥튀기가 생겨납니다. 키가 작았던 저는 [내가 뻥튀기 기계 속에서 몇 분 정도 구르고 나면 키가 2∼3배로 커졌으면 좋겠다] 하고 생 각하기도 했고, [적은 돈을 집어넣으면 그것도 그렇게 되기를] 바랬었습니다.
사랑의 마음도 그런 기계를 통해서라도 커졌으면 좋겠고, 나눔의 정신도 그렇게 커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빵을 많게 한 기적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 다. 왜 그랬을까요? 빵은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어보자며 호기심 섞인 마음으로 다가왔던 사람들이 그분께 매료되어 떠날줄을 몰랐었기에, 처음부터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기대하기도 어려운 처지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장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고, 바로 그것을 이루어주고 계십니다.
매일 같이 노동을 해야만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 이제부터 는 집에 가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병이 다 나을 때까지 잘 먹으면서 편히 쉬어 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지는 못할 겁니다. 오 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워서 더욱 병이 가중되지는 않 을까요?
이렇게 예수님 시대에는 빵의 기적이 가장 필요했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어떤 기적일 필요할까요? 돈을 뻥튀기는 기계의 얘기처럼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기적은 바로 돈이다, 경제문제라고!] 라고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각기 알아서 먹을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자는 제자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하신 단 한 가지의 제안이었습니다. 그것 이외에 다른 제안이 없었기에 제자들은 예수 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지만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 들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가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이 갖고 있다고 했던 것을 재료로 삼아, 단지 제자들이 먹어도 모자랄 먹거리, 곧 그들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가지고, 그 자리에 모였던 모든 사람이 함께 나 눌 수 있는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없습니까?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놓고, 그것을 이웃과 기꺼이 나누고자 할 때 기적은 바 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 것 을 챙기고, 절대로 손해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아무런 기적도 기대할 수 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하느님께서 그와는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증거 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말로써만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인 모습으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 력하는 것이 진정한 이웃의 모습,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간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기적은 제비다리를 고쳐주고 거져 얻는 보화도 아니고, 뻥튀 기를 통해서 자신의 재산을 거져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마태 14,19).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배불리 먹었고, 오히려 열 두 광 주리를 가득 채웠다](20절). 이것이 바로 가장 구체적인 이웃의 모습, 가장 구체적인 나눔(사랑)의 모습, 가장 구체적인 기적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심 없이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들 가운데서는 바라지도 않았던 기적이 살아 숨쉬게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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