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9월 15일) | |||
---|---|---|---|---|
작성자오창열 | 작성일1999-09-14 | 조회수2,93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히브 5,7-9 : 요한 19,25-27)
로마의 성 베드로 성전 안에는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라는 유명한 대리석상(像)이 있습니다. ’통고의 성모상’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성모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센다이 시립 박물관에는 ’슬픔의 성모’라고 전해지는 성화가 있습니다. 빨간 옷 위에 푸른색 망토를 걸치고 그 가슴에는 단검이 박혀있습니다. 이처럼, 성모님의 마음 안에 새겨진 예수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것이 오늘 축일의 의미입니다.
성모님은 가장 사랑하는 아드님 예수께서 악인으로부터 치욕과 놀림을 당하시고 웃음거리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신음하며 괴로워하실 때, 이것을 모두 자기 몸에 주어진 것이라고 느끼고 아드님과 고통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성모님은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교회헌장 58).
성모님은 이 슬픔을 이미 아들의 탄생 40일 후부터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모님이 생후 40일 된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했을 때, 시므온이라는 신심 깊은 늙은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루가 2,34). 이 예언대로 헤로데 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에서의 불안하고 쓰라린 피난 생활, 길을 잃은 12세의 소년 예수를 애타게 찾아다니신 사흘간의 근심과 고통 등은 골고타의 언덕을 향해 가는 십자가 희생의 준비였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왜 골고타 언덕에서 아드님이 피땀을 흘리며 십자가에 못 박혀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보기에도 처절한 모습을 당신의 눈으로 끝까지 보지 않으면 안되셨을까요? 그 행위야말로 우리들에 대해서 성모님이 하실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의 표시였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이신 아드님의 희생에 그 맑은 마음의 고통을 합해서 함께 아버지께 바친다’고 하는 최고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다름 아닌 성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정신적 순교’입니다. 성 알퐁소도 "마리아의 슬픔은 바다에 비유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바다는 넓고 맛은 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을 슬퍼하고 탄식한 것도 결국은 우리들의 죄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의 고통에 자신의 슬픔을 곁들여 아버지께 바치고 죄 많은 인류를 위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간구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자발적으로 아들과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써 "잃어버린 세상의 가장 걸맞은 속죄자가 될 자격을 얻으셨습니다."(성 보나벤뚜라). 그리고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과 성혈로써 우리들을 위하여 주시는 모든 선물의 분배자가 되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골고타 언덕까지 예수님을 수행하고, 그 곳에서 행해진 최초의 미사 성제에서 우리들을 하늘 나라의 생활로 다시 나게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리아에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고 말씀하시고, 요한에 의해서 대표되는 인류 전체를 성모님에게 맡기시며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성모님을 구원의 단체, 즉 교회의 어머니, 은총의 분배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지상 사명을 마치시면서 당신을 믿어 하느님의 아들이 된 모든 사람을 다시금 성모님에게 맡기셨습니다. 요한으로 상징되는 하느님의 백성, 이른바 교회는 그 날부터 성모님을 집으로 맞아들여 ’영적 어머니’로 모시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으면 무덤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어미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당신 아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끝까지 동참하시면서 그 아픔을 나누셨듯이, 고통과 시련과 어려움 중에 있는 당신 자녀들의 삶에도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고통보다 큰 법이어서, 자녀들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모님을 나의 영적 어머니로 모시고, 성모님께 자신을 의탁하며 봉헌된 생활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모님을 통해 큰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