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의 감추어진 길](9월 2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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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창열 | 작성일1999-09-24 | 조회수2,72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 25 주간 토요일 (루가 9,43s-45) 예수님의 감추어진 길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거룩한 변모를 보여주시고(9,28-36)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를 치유(9,37-43)하신 내용 다음에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치유를 통한 위대한 능력을 체험한 제자들에게 수난의 길을 예고하시는데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멀지 않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 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제자들도 역시 군중들처럼 예수님의 영광과 능력에 도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해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소귀에 경 읽기’이지요.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또 감히 물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성숙한 사람, 덕에 이른 사람일수록 좋아도 좋다고 하지 않고 안 좋아도 안 좋다고 하지 않습니다. 덜 성숙한 사람, 덕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만 좋아도 난리 법석이지요.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고 싶어서 가만 있지를 못하지요. 일부러 찾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랍니다. 반대로, 조금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요? 당장 세상살이가 끝장난 것처럼 울상이고 죽을 지경인 것처럼 오만상이지요.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의 감정의 폭이 그만큼 크지요. 성덕에 이른 성인들은 말하기를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좋다고 하지 말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안 좋다고 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지 내적 평화와 기쁨을 잃지 않고 항상 일관된 마음, 평상심을 유지하라는 뜻이지요.
기도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지요. 마음의 집중이 잘 되고 주님과 일치를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 때에 우리는 기도가 잘 된다고 말하지요. 항상 이런 식이라면 모두가 즐겨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아요. 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지,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간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지요. 감각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되면 좋을 때는 너무 좋아 지속적인 기도생활을 이룰 수 있지만 좋지 않을 때는 금새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중단하게 되고 말지요.
수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되물을 생각도 하지 못한 제자들의 마음도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영원토록 그 곳에 머물고 싶어했지요.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를 치유해 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 크게 감탄하고 있었지요.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이 제자들의 귀에나 들어왔겠어요? 한 곳에 치우치면 본질적인 것을 놓치기 쉬워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과 능력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예수님의 최후는 제자들에게 감추어진 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유혹은 항상 존재한답니다. 우리 인생길이 언제나 내리막길이나 평지일 수는 없지요. 가파른 오르막길일 수도 있지요. 대개의 경우에, 어렵고 힘들 때에 사람은 그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지요. 좋을 때에는 만사 OK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를 보면 그 사람의 본모습을 알 수 있게 되지요. 좋을 때에는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 때문임을 잊지 말고 감사드려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며 겸손하게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좋은 일만 있으면 겸손할 수 없지요.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겸손하라고 일깨워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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