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리스도를 아는 방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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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9-30 | 조회수2,62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그리스도를 아는 방법> 느헤 8,1-4ㄱ.5-7ㄱ.7ㄷ-12; 루가 10,1-12
오늘은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예로니모 신부님은 4세기 중반부 터 5세기 초반까지 로마와 베들레헴에서 사제 생활을 했던 성서학자였습니다. 예 로니모 신부님은 성서학자답게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 다](성 예로니모 사제의 <이사야서주해 서문>에서, 성무일도 제4권, 1451쪽 참 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로니모 신부님은 이사야서를 해설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십니다.
[내가 몇 마디 말로 주님의 모든 신비를 포함하는 이 성경책의 내용을 다 취급 하려 한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사실 이사야서에는 주님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 신 임마누엘로, 여러 놀라운 일들과 기적들을 행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부 활하신 분으로, 그리고 만백성의 구세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물리, 도덕, 논리 에 대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성서 전체에 나오는 모든 것과 인간의 혀 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인간의 이해력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이사야서주해 서문, 같은 책, 1452쪽).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반드시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만날 수 있는 성서의 연구 와 묵상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성서의 말씀은 늘 새롭게 우리들을 일 깨워주십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신비는 우리들이 처해 있는 여러 가지 다 른 상황이나, 우리들의 마음가짐이나, 혹은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하고 싶으신 메시지에 따라서 우리들 안에서 다르게 들려질 수 있습니다. 매해마다 같은 성서 구절을 묵상하게 되지만, 그 때마다 다른 묵상의 내용이 떠오르고 맘속에 새겨지 게 되는 것은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을 만남으로써 나의 내면과 외적인 행동이 함께 변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력에 참여하려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비록 그가 사제일지라도, 신앙을 갈구하는 평신도일지라도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말씀조차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습니 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 씩 짝지어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만 하는데, 세상은 마치 어린양을 잡아먹기 위해서 눈 을 시뻘겋게 뜨고 기다리는 이리떼와 같다고 표현하십니다. 비록 사도인 어린양 은 평화를 원하지만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이리떼와 같은 세상의 유혹과 힘겨운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고서는 힘겨운 투쟁을 결코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희망이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신앙의 신 비를 절절히 사는데 있는 것임을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들 에게는 더 이상 세상을 상대로 투쟁할 힘도, 아무런 희망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물정에는 문외한 같은 어린양인 우리들이 세상의 여 러 가지 잡다한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고 말씀하 십니다. 자신의 일상을 꾸미기 위해서 욕심을 부리거나, 누구를 사귀느라고 하느 님의 일을 등한시해서도 안됩니다. 여기 저기를 옮겨다니면서 스스로를 부산하게 만들기보다는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사실](루가 10,11)과 이 복음을 분명하게 선포해야 할 자신의 사명만큼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 1,21)라고 우리들이 말할 수 있 는 것이라면, 오늘 예로니모 성인의 고백처럼 [성서를 알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씀이 곧 우리들 가운데 머물러 계심을 믿으며, 그 말씀을 곱씹고, 그 말씀을 먹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 니다.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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