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첫마음] (연중32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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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11-06 | 조회수2,405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연중 제32주일 <첫마음> 지혜 6,12-16; 1데살 4,13-18; 마태 25,1-13
여러분은 [개미]라고 하는 소설을 읽어보셨습니까? 프랑스 출신의 베르나르 베 르베르 라는 여류 작가가 발표해서 전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작품입니 다. 저도 책이 발간되었을 때 관심을 갖고 읽었었는데 참 재미있었고, 개미의 세 계라고 하는 미지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그 사회 구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화제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 작품을 우리 나라에 소개해 준 사람은 번역 작가 이세욱 님이었습니다. 이 세욱 님은 프랑스 소설 [개미]를 여러 번 읽고 나서 번역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 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의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개미를 비롯한 곤충의 세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고, 우리 나라 독자들에 겐 무명의 신인이나 다름없던 작가 베르베르의 특별한 재능과 남다른 노력을 널 리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 이세욱 님은 곤충학 서적들을 찾아 읽고 개미와 관련된 자연 다큐 멘터리를 두루 보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작업이 어느 정도 진 행되자 이번에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 프랑스로 날아갔습니다. 프랑스에 가서도 바로 작가를 만난 것이 아니라, 다시 소설을 여러 번 읽고 작가와 관련된 기사들 을 꼼꼼히 검토하고 작품의 무대인 퐁텐블로 숲을 돌아보는 것으로 작가와의 인 터뷰 준비를 했습니다. 이렇게 처음에 가졌던 그 열정을 그대로 쏟아 부으며 마 련했던 소설 [개미]가 발간되었을 때 작가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며 기뻐 했다고 합니다.
재밌는 것은 그 소설이 나온 지 벌써 6년이 지났고, 그 이후로도 이세욱 님은 20여 종의 새로운 책을 번역해오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를 소설 [개미]의 번역가 로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이세욱 님은 자기 작업 의 성과를 사람들이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서운함도 느꼈지만, 한편으 로는 처음에 가졌던 그 열정만큼 끝까지 잘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자신을 아는 사람들도 그와 같은 것을 쉽게 느끼 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 가졌던 참으로 순수하고 고귀한 열정을 우리들은 [첫마음] 혹은 초발심(初發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불꽃같은 마음만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면, 도를 닦는데 있어서나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나태함 이 없고, 사랑을 나눔에 권태가 없으며, 일을 함에 있어 지침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얘기를 실어놓은 책을 읽다보면 사랑에 푹 빠진 사람들이 결혼에 꼴인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끓어하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밤마다 뜬 눈으로 지새우며 어떻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드디어 양가의 승낙까지 얻고 나 면 이때 부턴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혼배 미사를 몇 번 주례해 봤지만, 떨지 않고 혼례식에 임하는 새 신랑신부는 보지 못 했습니다. 그들은 예식을 마친 다음 이구동성으로 [예식은 처음이라서‥‥]이렇 게 말하곤 합니다. 첫 경험이라는 것은 사람을 주눅들게 하고 가슴 떨리는 긴장 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틀림없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가 자신에게 왔다는 기쁨 때문에 최대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 여서 혼례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열 명의 처녀들도 모르긴 몰라도 혼례에 참여하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두고 준비해 왔을 테고, 당일이 돼서는 극도의 긴장과 설렘으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신랑이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예 비 신부들은 신랑을 기다리다 지쳐서 잠이 들었죠. 안내하는 사람들이 [저기 신 랑이 온다!]며 준비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초저녁에 일찌감치 혼례를 치르고 신방에 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신부들이었지만, 신랑이 늦게 도착하자 비로소 불을 밝힐 기름이 모자란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서는 [열 명 가운데 다섯은 슬기로 웠고 다섯은 미련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움과 미련함의 기준은 혼례를 위한 준비를 꼼꼼하게, 끝까지, 충실히 해냈느냐]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혼례 일자가 잡혀진 이래로 당일까지 많은 준비를 해왔을 것입니다. 혼 수며, 미용이며, 친지에 대한 안내와 인사 등 여러 가지 준비를 잘 해내기 위해 서 여념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신랑을 맞게 된다는 그 기쁨에 겨워서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시간들이 어려운 줄 몰랐었는데, 그 중 다섯은 그런 열정 들을 끝까지 밀고 갔던 사람들이었고, 그 중 다섯은 그 열정을 마지막까지 끌고 나갈 추진력과 지혜가 모자랐던 것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그 마음이 중간에 변해 버렸거나, 추진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첫마음!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설렘이 생기지 않을까요?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새 결심을 하고 시작했던 추억들, 고통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결심들, 사랑하는 사람과 맺었던 뜨거운 사랑의 약 속들, 주님을 위해서 봉헌하겠다고 맹세했던 서원의 약속들이 [첫마음]이라는 단 어 속에 녹아들어 있기에, 그것을 기억하는 우리들 속에서는 그 가슴 찡하고, 뭔 가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포부와 희망이 한꺼번에 밀려들게 하는 단어가 바로 이 [첫마음]인 것이지요.
우리들은 무엇을 하든지 꾀를 부리고 싶거나 안이한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처음 시작하던 때의 그 풋풋한 정열을 돌이키면서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습니 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과 재능도 세상의 속된 것에만 정신을 쏟으면 아무 쓸모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는 세례 때, 성서를 공부하면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일 때에 가졌던 그 [첫마음]들 이 저 깊이 지하 어두컴컴한 창고 방에서 방치된 채, 그 마음의 주인이 자기를 꺼내줄 그 날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증언하고 실천하여, 어두운 세상 에 불을 밝혀 줄 신랑이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 들의 이런 노력이 한 두 번의 시도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 록 처음 신앙을 고백했던 그 날의 가슴 설렘을 힘으로 삼아 노력해 나갈 수 있었 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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