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청소년 = 교회(11/19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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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우진 | 작성일1999-11-18 | 조회수2,366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희년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자신의 어려움으로 자각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바로 청소년 사목 분야와 관련된 어려움이지 않을까?
교회 간행물을 장식하고 있는 청소년 관련 기사의 내용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주일 학교가 비어있다!", "사목자들의 관심 부족!", "교재와 청소년 관련 전문가의 부족!" 등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시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업 행위를 "강도의 소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나무라시면서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을 질타하신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의 반응은 물론 그를 "잡아죽이려"하지만 백성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그분 곁을 떠나지 않았기에 실패에 그치고 마는 이야기가 오늘 복음의 개요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당시의 교회 모습과 오늘날의 한국 교회의 모습, 특히 청소년 사목과 관련된 교회의 태도와 모습을 보면서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라고 부르짖는 표어 보다 "청소년들 역시 그들 자신만의 현재가 있다!"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위해 마련되는 교회의 자리는 "다양성속에 일치"를 추구하는 가톨릭 교회의 당연한 모습이 아닐까? 만일 그와 같은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 없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가 교회"라고 하는 교회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그들은 성숙의 여정을 걷고 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일생을 통해 보여주신 그 성숙의 여정을 걷고 있는 것처럼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성 세대와 사고 방식과 삶의 모습이 다른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추구하는 진지함, 엄숙함 보다는 "기쁘고, 재미가 있는, 흥미가 있는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고, 준엄함 보다는 자신들과 "함께 있어줄 수 있는 교회 지도자들"을 원하는 것이다.
청소년 교리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그들과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어갈 동반자들이 더욱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단지 어리고 미숙하다는 이유로 1차적 대상이 되기보다는 늘 내밀리는 여건이다. 교회안에서도 그와 같은 현실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우리는 알고있고, 그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처럼 우리들 자신들이 그분 곁을 떠나지 않을 때, 즉 복음의 정신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릴 때 교회 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서도 청소년들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신앙은 글이나, 논문, 토론등의 사변적이고 학문적인 경로를 통해서도 전수와 보존이 이루어지겠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먼저 살아가는 이들의 모범이 신앙이 전수되고, 보존되며, 심화되는 첨경이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기성 신앙인들을 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도 전수하고 싶은 보존하고 싶은 신앙의 모습이 있음을 인정해야되리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이 바로 교회"임을 잊지말아야 겠다. 좋은 하루 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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