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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좀 더 신앙인답게] (34/토)
작성자박선환 쪽지 캡슐 작성일1999-11-27 조회수2,749 추천수13 반대(0) 신고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좀 더 신앙인답게>

                      다니 7,15-27; 루가 21,34-36

 

구멍가게를 하시는 부모님과 두 딸이 함께 가게에 딸린 방에서 살고 있었습니

다. 하지만 막내딸은 한 번도 자기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게에서 팔고 남은 야채는 엄마의 멋진 요리솜씨로 맛난 저녁반찬이 되어주었

고, 좀 썩은 과일은 언니와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에 사철 내내 갖가지 과일도 먹

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막내딸은 가끔씩 엄마에게 ’엄마 나도 크면 우리

집 같은 가게를 차릴 거다’하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막내딸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시골학교에서의 장

학금이란 공부보다는 형편이 좋지 못한 아이에게 가기 마련이어서, 막내딸은 매

학기 장학금을 받으면서 ’정말 우리 집이 가난한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0년을 넘게 써서 털털거리는 세탁기하며, 고장 나 한쪽만 쓸 수 있

는 가스 렌지, 문이 떨어져나간 싱크대, 온통 담배 불똥 자국과 칼자국 투성이인

방바닥, 게다가 장사도 잘 안 되어 생활보호대상자가 되고 보니 막내딸은 자신의

집이 정말 가난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점점 우울해져 가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이런 글귀를 읽게 되

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고 말하는 이는 복권 1등을 놓친 거

나 다름없다.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했다고 말하는 이는 복권 1등에 당첨

된 것과 같다.’ ’그럼 내가 복권 1등을 놓친 사람인가?’ 막내딸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고,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외숙모 할머니께서 집에 오셨을 때 방안으로 들어서시며 할머니께

서는 온통 담뱃불과 칼자국으로 금이 쩍쩍 가 있는 방바닥을 보시곤 배를 잡고

한바탕 웃으셨습니다. 할머니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던 막내딸은 얼른 이렇게 말

했답니다. ’할머니 이건 우리 가족의 예술작품이랍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대단히 순수한 마음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

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놓인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많은 노

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남들처럼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 수 있을

까’를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겨’ 먹구름을 드리운

어두운 모습일 때도 있지만, 이내 ’이것이 나의 삶이지~’ 라는 생각으로 어려움

을 이겨냅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들 말고,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또 한 가지지

덧붙여야할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그건 다름아니라 믿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 세

상을 읽어내는 지혜입니다. 아주 순수하고, 대단히 단순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줄

알면서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머물러 주심에 감사드리며, 내게 하느님의 뜻을

구할 줄 아는 마음을 심어주심에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그리고 하루도 빼먹지 않

고 늘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아들이 오시는 그 날]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남들하고 어울려서 재밌게 놀다가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돈이 특

별히 많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이기

에 남들이 기울이지 않는 노력이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일하는 시간 틈틈이,

노는 시간을 쪼개서 하느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습

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서는 결코 기도할 시간을 낼 수가 없습니다. 계획해 놓

지 않고서는 어느 날 갑자기 기도하려는 마음이 생겨지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오시지 않고, [갑자기 닥쳐올 사람의 아들 앞에 서는 일]이 쉽게 이루

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가 21,36) 하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어떤 시간

의 마지막 때를 살아가면서 묘한 긴장과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

다. 잘못된 삶에 대한 후회보다는 준비하고 기다렸기에 담담한 마음으로 새 일

과, 새 사람과, 새 세상을 맞이하는 기쁨이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함께 머무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우리 마음을

맞춰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인들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선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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