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2월 7일 복음묵상
작성자노우진 쪽지 캡슐 작성일1999-12-06 조회수2,376 추천수3 반대(0) 신고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99마리의 양과 길잃은 1마리의 양!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99마리을 선택하는 것이 길잃은 1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이는 것보다 더욱 경제적이고,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1마리의 길잃은 양을 선택하라는 오늘 복음의 가르침은 결코 현실적, 경제적, 합리적, 일반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나는 먼저 과연 현실적이고,경제적이며, 합리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의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

결국 나의 기준, 나의 이익이, 나에게 돌아오는 그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

즉, 양의 관점에서 기준을 삼는 것이 아닌....

 

오늘 복음의 내용 안에서 길잃은 양 1마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99마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소외되거나, 망하도록 놔두지 않고 모든 양들을 모으려는 목자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 복음은 목자의 태도를 통해 우리를 잃지 않으시려는, 우리가 망하도록 나두시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전해준다.  보잘 것없는 이들, 숨어있는 이들, 소외된 이들을 품으시려는 그 마음을 말이다.  이같은 마음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일까?

 

교회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가르친다.

나는 과연 이것을 믿고 있는가?  과연 내 안에 하느님 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가?  비록 그것이 볼 수 없는 것이어도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 길잃은 1마리의 양까지도 모아들이려는 그 마음을 성숙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기준을 단지 다수라는 이유로 절대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늘날 소수의 의견은 결코 올바를 수 없는 것일까?  꼭 다수만이 옳은 것일까? 묻게 된다.

용기 있게 다수가 틀렸음을 지적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 삶의 영원한 기준인 복음을 통해서 말이다.  문제는 내가 그 복음의 가르침을 과연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냐? 일것이다.

 

나의 삶 안에서 그 마음을 조금씩 키워나가기 위해 오늘도 운동장 어두운 곳에서 홀로 앉아있는, 다른 아이들이 멀리하는 아이들에게 나의 시선을 두어야 겠다.  

모든 아이들이 선한 시민,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좋은 하루 되소서~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