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와 같이 되신 예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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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연 | 작성일1999-12-15 | 조회수2,68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나는 주님이다. 누가 또 있느냐? 빛을 만든 것도 나요, 어둠을 지은 것도 나다. 행복을 주는 것도 나요, 불행을 조장하는 것도 나다. 이 모든 일을 주님인 내가 하였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주님은 그저 나는 수준이 아니시다. 우리가 아무리 바둥거리면서 내 인생을 꾸려나간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 위에서 조정하시는 이가 주님이시다. 그렇다면 내가 애써 무엇을 할 의미가 있겠는가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기 보다는 이 모든 것을 마련하시는 주님께 맡기자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하리라.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약속된 메시아를 믿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보고 긴가 민가 했을 터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실 분은 하느님 뿐이시라는 것은 이미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 이지만 그들이 꿈꿔왔던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메시아가 아닌 약한 이들과 병든 이들, 세리와 창녀편에 선 예수가 과연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을 품었던 것이다. 우리가 현대에 와서 품는 의심은 어떠한가.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는 확신한다. 영적인 면에서의 구원에 대해서는 그렇게 확신하지만 현실 속에서의 구원은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예수님이 우리의 부와 건강, 명성을 보장하실 수 있는지는 의심한다. 모든 세속적인 조건이 충족된 후에야 마음의 안정을 위해 주님, 주님 하지는 않는가. 마음의 안정이 우선이어야 그 모든 것이 감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를 못한다.
그때도 예수님이 던진 말씀은 우리 인간의 나약함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배경, 환경이 변했을지라도 여전히 우리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연약한 우리를 내치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신다. 그래서 우리가 고통 받고 유혹 받는 연약함을 이해하신다. 그리고 우리를 그것들에서 구해주시기 위해 우리를 도우러 오신다.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야훼여, 저를 어루만져 주시어 마음의 상처를 고쳐 주십시오. 저를 붙들어 주시어 성한 몸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저는 주님 한 분만을 기립니다." <예레미야 17;14> 제 입을 통해서 늘 이렇게 찬양할 수 있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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