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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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구흥 | 작성일2000-02-26 | 조회수2,408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2/25/00 오늘의 복음: 마르코 10장 1-12 9절: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결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다수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사람과 이야기할 때, 서로 예의를 지키기 위해 피하는 화제가 종교에 관해 서이다. 마찬가지로, 비 신자였던 남편과 살면서 그의 의견과 가치관을 존중해주기 위해서 또한 나의 가치관에 침해를 받지 않기 위해, 하느님이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피하면서 살왔다. 그렇게 외짝교우 생활을 18년이나 별탈 없이 해 온것도 하느님의 은혜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남편과 나는 관면 혼배를 하였다. 남편은 본인 자신이 입교하지 않았어도 결혼 후 배우자와자녀가 교회 나가는 것을 허락할 것을 약속할 때, 교회는 혼인을 허락하는 것이다. 나와의결혼을 위해 신부님과의 면담에서 약속한 남편은 오랫동안 하느님을 믿지 않았어도, 나와 우리 아이가 성사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었다.
근래에와 혼인 성사를 받었어도 시회법적으로 이혼한 부부들 주위에서 많이 본다. 오늘 복 음대로, 교회법상으론 이혼이라는 것이 없다. 교회 법을 어기면서도 이혼한 부부들, 구절 절 사연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사연들 들어보면, 인간적인 생각으론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음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천주교 신자인 나도, 가끔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고 어 휴, 헤어지는 것이 낳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그런가? 그것은 결혼이라는 것을 인간이 주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나에게 중요한 것을 다시 일깨워준다. 교회에서의 결혼, 혼인 성사의 주관자는 하느님이시지 인간이 아니심을. 비록 결혼의 주인공은 결혼 당사자들이지만, 그들의 각본은 성서, 즉 하느님 말씀에 의거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결혼함은 결혼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가끔 잊고 산다. 문제가 있을 때, 하느님께 향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의거한다. 쉑스피어의 작품을 연기하는 주인공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해도 그 각본대로가 아니라면, 그것은 쉑스피어의 작품이 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교회에서 주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결혼한 우리들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돌려 놀 수가 없다. 돌려놓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주님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우리 친척이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결혼 생활을 아주 모범적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런데 관면 혼배로 결혼한 나는 외짝 교우 생활을 18년 동안 하면서 제일 답답했던 것이 당시 비신자였던 남편과 성서를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과학자이면서도 여러 분야에 박식한 남편과의 대화는 철학, 과학, 경제, 문학, 음악, 예술 등 다양했고, 직장, 가족, 음식과 술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즐겨해 왔다. 몇 시간이고 이이야기 저이야기 나누며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지만 그래도 내겐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음을 느껴왔다.
이렇게, 남 보기에 모범적인 부부라고 일컬어지는 나에게도 그 당시 성서를 함께 나눌 수 없는 상황이 항상 나를 허전하게 만들었는데, 이혼한 사람, 별거한 사람들의 마음이 그 얼마나 허하게 느껴질까? 마찬가지 하느님의 마음도 무척 아프시겠지...
이혼한 부부들을 위해 기도 드린다. 자비하신 주님, 주위에 당신 안에서 결혼을 했지만 이혼한 분들을 많이 봅니다. 당신 말씀엔 이혼이란 말이 없지만 당신에겐 사랑과 자비가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전지 전능하시기에 그들을 당신께로 부르실 수 있습니다. 당신 보시기 에 그들의 결혼이 잘못된 것이라면, 결혼 취소/실효의 탄원서를 수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 생활할 수 있도록 은총 주시옵소서. 2/25/00 오늘의 복음: 마르코 10장 1-12 9절: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결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다수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사람과 이야기할 때, 서로 예의를 지키기 위해 피하는 화제가 종교에 관해 서이다. 마찬가지로, 비 신자였던 남편과 살면서 그의 의견과 가치관을 존중해주기 위해서 또한 나의 가치관에 침해를 받지 않기 위해, 하느님이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피하면서 살왔다. 그렇게 외짝교우 생활을 18년이나 별탈 없이 해 온것도 하느님의 은혜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남편과 나는 관면 혼배를 하였다. 남편은 본인 자신이 입교하지 않았어도 결혼 후 배우자와자녀가 교회 나가는 것을 허락할 것을 약속할 때, 교회는 혼인을 허락하는 것이다. 나와의결혼을 위해 신부님과의 면담에서 약속한 남편은 오랫동안 하느님을 믿지 않았어도, 나와 우리 아이가 성사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었다.
근래에와 혼인 성사를 받었어도 시회법적으로 이혼한 부부들 주위에서 많이 본다. 오늘 복 음대로, 교회법상으론 이혼이라는 것이 없다. 교회 법을 어기면서도 이혼한 부부들, 구절 절 사연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사연들 들어보면, 인간적인 생각으론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음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천주교 신자인 나도, 가끔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고 어 휴, 헤어지는 것이 낳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그런가? 그것은 결혼이라는 것을 인간이 주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나에게 중요한 것을 다시 일깨워준다. 교회에서의 결혼, 혼인 성사의 주관자는 하느님이시지 인간이 아니심을. 비록 결혼의 주인공은 결혼 당사자들이지만, 그들의 각본은 성서, 즉 하느님 말씀에 의거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결혼함은 결혼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가끔 잊고 산다. 문제가 있을 때, 하느님께 향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의거한다. 쉑스피어의 작품을 연기하는 주인공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해도 그 각본대로가 아니라면, 그것은 쉑스피어의 작품이 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교회에서 주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결혼한 우리들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돌려 놀 수가 없다. 돌려놓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주님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우리 친척이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결혼 생활을 아주 모범적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런데 관면 혼배로 결혼한 나는 외짝 교우 생활을 18년 동안 하면서 제일 답답했던 것이 당시 비신자였던 남편과 성서를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과학자이면서도 여러 분야에 박식한 남편과의 대화는 철학, 과학, 경제, 문학, 음악, 예술 등 다양했고, 직장, 가족, 음식과 술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즐겨해 왔다. 몇 시간이고 이이야기 저이야기 나누며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지만 그래도 내겐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음을 느껴왔다.
이렇게, 남 보기에 모범적인 부부라고 일컬어지는 나에게도 그 당시 성서를 함께 나눌 수 없는 상황이 항상 나를 허전하게 만들었는데, 이혼한 사람, 별거한 사람들의 마음이 그 얼마나 허하게 느껴질까? 마찬가지 하느님의 마음도 무척 아프시겠지...
이혼한 부부들을 위해 기도 드린다. 자비하신 주님, 주위에 당신 안에서 결혼을 했지만 이혼한 분들을 많이 봅니다. 당신 말씀엔 이혼이란 말이 없지만 당신에겐 사랑과 자비가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전지 전능하시기에 그들을 당신께로 부르실 수 있습니다. 당신 보시기 에 그들의 결혼이 잘못된 것이라면, 결혼 취소/실효의 탄원서를 수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 생활할 수 있도록 은총 주시옵소서.
- 성서묵상 나눔 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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