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해성사를 받는 사제(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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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3-10 | 조회수2,118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00, 3, 11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복음 묵상
루가 5,27-32 (레위를 부르심)
그 때에 예수께서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다.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
레위는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예수를 모셨는데 그 자리에는 많은 세리들과 그 밖에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 있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입니까?" 하고 트집을 잡았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묵상>
제가 사제가 된 지 이제 8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고해 성사를 주는 것이 사제가 되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종종 체험합니다.
고해 성사를 주는 것이 왜 힘들까? 좁은 고해소 안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든가? 훈계를 하고 보속을 주는 것이 힘든가? 물론 이런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바로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사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일 수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사제는 하느님을 대신하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죄를 짓고 사는 입장에서 인간적으로는 고해 성사를 준다는 것이 참으로 힘겨운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사실 고해 성사를 주고 있다보면 마치도 죄를 고백하는 교우가 저의 죄 고백을 듣는 듯 합니다. 교우의 죄의 고백이 마치도 저에게 내려지는 훈계와 보속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사제인 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교우들은 마치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고백을 합니다. 훈계를 하고 보속을 주고, 사죄경을 외운 후에 '주님께서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리면, 이내 참 기쁨을 느끼면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밝게 인사를 하고 고해소를 떠나 갑니다.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떠나는 교우를 보면 제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지만, 가슴 한 가운데서는 '나도 죄인인데...'라는 생각이 떠올라 무거운 마음을 가지곤 합니다.
사제가 되기 전에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제들은 고해 성사를 줄 주는 알지만, 자신들이 고해 성사를 자주 받지는 않는다." 고해 성사의 횟수가 문제가 아니라, 죄를 지으면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와 화해를 하기 위해서 고해 성사를 받아야 하는데 사제들은 이것에 대해 둔감하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제가 되면 고해 성사를 가능하면 자주 받자라고 다짐했었습니다. 새사제학교 기간동안에는 한달에 한번 정도 보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고해성사를 보려고 그 전에 언제 고해 성사를 보았는지 생각해 보니까 벌써 두달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본당 생활 3개월만에 이만큼 느슨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솔직하고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처럼 솔직하고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왜 시비를 걸었을까요? 이들은 자신들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어울리기를 원했는지 모르죠.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하십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사실 하느님 앞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자신의 죄를 솔직이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예수님과 함께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옆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함으로써 예수님과 어울려 지내는 죄인인 교우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제이고 싶습니다. 고해 성사를 주는 것이 더 이상 부담되지 않는 '고해 성사를 받는 사제'이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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