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종이 되신 주님(주님 만찬 성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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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4-21 | 조회수2,307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참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어제 미사 때 했던 강론을 올립니다.
2000, 4, 20 주님 만찬 성목요일 복음 묵상
오늘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미사를 통해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의 영적 양식으로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우리 신앙인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기쁨의 날이요 감사의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듣는 우리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바로 앞두고 유언과도 같은 말씀과 행동을 남기시면서 우리의 곁을 떠날 채비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조촐한 자리에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시는 예수님과, 아직도 주님이요 스승인 예수님의 마지막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여느 해의 과월절과 다를 바 없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생애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게 하는 식사 자리였습니다. 과월절을 맞이하는 제자들의 기쁨과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예수님의 슬픔이 함게 녹아있는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이 어우러져 있는 어색한 만찬 자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했던 "발씻김"이라는 행동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수님의 사랑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지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가장 낮은 자가 되어 제자들에게 당신을 내어놓으실 뿐입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렇게 내어놓는 당신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라고 하실 뿐입니다. 그리고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당신을 따르라고 당부하실 뿐입니다. 이 당부는 예수님께선 사랑하는 우리를 부르시는 감격스러운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자신을 낮추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영적 양식으로 자신을 내어주신 오늘 저의 자그마한 체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서 저는 제가 앞으로 살아야 할, 아니 살고 싶은 두 가지의 사제상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밥이 되어주는 사제'와 '똥 치우는 사제'입니다.
본당, 지구, 교구에서 청년 활동을 하던 제가 뒤늦게 하느님께서 사제로 부르시고 계심을 확신하고 사제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는 성체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었습니다. 영성체를 하면서 도대체 인간의 이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의문에 부딪치면서도 참으로 내게 먹을 것이 되어주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굳이 인간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 사람의 손에 죽어 가신 하느님, 바로 이 하느님께서 당신에 대한 사람의 죄악에 대해 보이셨던 행동은 오히려 받이 되어주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어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서로 상대방을 먹어 치우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당신을 밥으로 내어주심으로써 우리의 참된 회개를 촉구하시는 듯 합니다. 때때로 의례적으로 영성체를 하고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나가지 못하는 과정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계속해서 밥으로 내어놓고 계십니다. 바로 이처럼 밥이 되신 하느님께서 이제는 우리 자신을 밥으로 이웃에게 내놓으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다음으로 '똥 치우는 사제'와 관련된 체험입니다. 신학생이 된 후에 출신 본당 청년들과 함께 강원도 광덕에 있는 '평화의 집'이라는 장애인 공동체에 봉사활동을 간 적이 몇 번 있습니다. 한 번은 그 곳 원장님께서 제게 "학사님은 나중에 똥 치우는 사제가 되세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처음에는 조금 황당하게 느껴졌던 이 말씀이 이후에는 소중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똥은 사람에게 가장 추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사람들의 똥오줌을 치워준다는 것은 상대방의 추한 것을 기피하지 않고 사랑으로 씻어줌을 의미합니다. 사실 친부모나 형제의 대소변을 치워 줄 수는 있겠지만,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전혀 관계없는 이들의 대소변을 받아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자신의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혀 대가없이 하는 일이라면 더할 것입니다. 저 역시 몇 년 전에 성가 복지 병원에서 그리 길지 않은 두달 남짓 현장 체험을 하면서 이 일이 쉽지 않음을 체험하였습니다. 돌아보면 이 체험이 저에게 머리나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온 몸으로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한 소중한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찌 보면 똥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자신에게서 없애고 싶지만 결코 없앨 수 없는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추한 단면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씻어낼 수 없다면 누군가가 씻어주어야만 할, 사랑으로만 대신 씻어줄 수 있는 모든 이가 지닌 추한 이면입니다. 이 추함을 결코 배척하지 않고 감싸안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기에 미약하나마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똥을 치우는 사제'가 되고자 다짐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사실 '밥'과 '똥'은 우리에게 정반대의 의미로 다가오지만, 그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의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밥이 되어주고, 서로의 똥을 치워줄 수 있을 때에 우리의 삶은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참으로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신앙인 개개인 모두는 예수님으로부터 이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지금까지 과연 이 사명에 얼마나 충실하였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제자들을 떠나기 앞서 더욱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사람이 되어오셨고, 이제 당신의 목숨까지 버리심으로써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실 예수님게서 마지막으로 남겨 주신 말씀과 행동은 거창하거나 비장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신의 온 생애가 그러했던 것처럼 온전히 자신을 낮추고,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신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한 목소리로 예수님의 초대에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확신에 찬 응답을 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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