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시 예루살렘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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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4-26 | 조회수2,205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복음 묵상
루가 24,13-25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다.)
예수님의 제자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루살렘은 이제 더 이상의 영광의 도시도, 희망의 도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죽음의 도시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떠납니다. 엠마오가 최종 목적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이 시급할 뿐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길을 걸으면서 계속 예수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니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할수록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예수님에 관한 것뿐입니다. 단 하나의 희망이었기에, 가장 완전한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좌절로 다가온 사건이기에 몸부림쳐도 헤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몸은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마음만은 어쩔 수 없이 예수님과 함께 했던 예루살렘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쉬움과 원통함이 가득합니다.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어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십니다. 당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다른 이들을 통해 당신의 발현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몸소 발현하신 것입니다. 이미 다른 이들을 통해 당신의 부활을 알려주었건만, 이들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친히 발현하셨지만, 여전히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음의 눈을 닫고 자신들의 감정과 슬픔 안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물어보시는 예수님께 오히려 어처구니없다는듯한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대답할 뿐입니다.
분명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보았고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나타난 권능,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에 대한 것 등등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에 대해 마지막에 머물러 있는 곳은 바로 예수님의 처참한 죽음입니다. 이들은 빈무덤 사건, 천사의 예수님 부활 선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발현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기에 죽음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에 대한 이들의 앎은 반쪽만의 앎이었습니다. 아니 완전한 무지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이 예수님의 모든 것은 의미를 잃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반쪽의 앎을 가지고, 아니 무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사고와 앎의 한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당신에 대해 차근차근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합니다. 아니 알아듣기는 하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예수님의 해박한 지식에는 감동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 함께 머물자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던 예수님께 대한 성서 말씀을 듣고 지적인 만족을 느끼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살아계신 예수님을 여전히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 시간에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찬양을 드리고 빵을 떼시자 이들의 마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온전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실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들도 예수님이 사라진 것에 대해 더이상 아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벅찬 감격과 흥분에 잠겨 있습니다.
이제 더이상 엠마오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늦은 밤 발길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예루살렘은 절망과 죽음의 도시가 아니라, 참된 희망의 고을이 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야 했습니다. 억제할 수 없는 힘이 이들을 지체없이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갑니다.
과연 저 자신이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돌아봅니다. 아니 그 전에 어디로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봅니다.
부활을 맞이하면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씀은 "부활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부활 판공, 성삼일 전례 준비 등등 바빴다면 바쁠수도 있는 시간들을 뒤로 하고 조용히 부활하신 주님 안에 머물러 봅니다. 주님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느끼기 보다는 무리없이 모든 일을 마쳤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성삼일 전례의 연출자가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부활을 맞이하는 데에 소홀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주님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제 무거운 몸과 마음을 훌훌털어버리고 새 마음으로 다시 일어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엠마오로 가는 무거운 발걸음을 접고 새로운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의 일상 안에서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먼저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글을 읽으실 모든 형제 자매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뵐 수 있으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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