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롭게 다가오는 일상 생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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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4-28 | 조회수2,272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부활 팔일축제 내 금요일 복음 묵상
요한 21,1-14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
예수님께서 허무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적어도 제자들의 눈에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제자들은 자신의 생업과 가족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겼었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벌어질 것이라는 희망, 자신들도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에 함께 한다는 보람을 가지고 예수님의 길에 함께 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들의 희망이 산산히 부서졌음을 체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나 자신들에게까지 닥칠 지 모르는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 걸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발현하셨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요한 20,19-23). 이뿐만이 아닙니다. 처음 예수님께서 발현하셨을 때 같이 있지 않았던 토마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한번 더 당신을 드러내셨고, 믿음의 힘을 알려주셨습니다(요한 20,24-31).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산히 부서진 희망을 다시금 추스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가장 손쉬운 삶의 길을 선택합니다.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부르심 받기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말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당연한 일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다가 그것이 난관에 부딪히고 더 이상 이끌어나갈 힘을 잃어버릴 때 인간적으로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앞장섭니다. 다른 제자들이 함께 따릅니다. 이렇게 이들은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간과 기억들은 일장춘몽으로 날려보내고 이제 자신들의 삶을 힘겹게 꾸려나가야만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처해졌던 자신들의 삶은 변화시키지 못했던 제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부르심받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왔지만, 이러한 회귀는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능수능란한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어느 무엇보다 자신있었던 고기잡이에서 실패하고 맙니다. 또 다시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자신의 소명을 뒤로 하고 일상 생활로 돌아간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일상 생활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고기잡이'라는 일상 생활로 파견하십니다. 어제의 실패와는 다르게 오늘은 커다란 성공을 거둡니다.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고기잡이라는 일상 생활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장소, 똑같은 일이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어제의 제자들은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아갔던 사람들이지만, 오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긴 사람들입니다.
어제의 고기잡이는 제자들의 일, 사람의 일이었지만 오늘의 고기잡이는 예수님의 일이요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파견받은 임무였습니다.
어제의 호수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뜻에 따라 선택한 삶의 자리였지만, 오늘의 호수는 예수님께로부터 파견받아 떠난 새로운 삶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 안주하려는 제자들을 결코 질책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삶의 자리가 지니는 의미를 완전히 변화시킴으로써 새롭게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뒤늦게나마 예수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했습니다. 그러기에 마침내 주님의 부활을 온 몸으로 받아드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제자들의 그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안에 들어오시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우리의 일, 우리의 삶의 터전, 과연 이 모두가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요?
부활 체험, 부활을 사는 삶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일상 생활 안에서 항상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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