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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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4-29 | 조회수3,097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부활 팔일축제 내 토요일 복음 묵상
마르 16,9-15 (막달라 여자에게 나타나신 예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 제자들의 사명)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는 예수께서 일찍이 일곱 마귀를 쫓아 내어 주셨던 여자였다.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이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뒤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시골로 가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 두 사람도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으나 그들은 그 말도 믿지 않았다.
그 뒤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신 것을 분명히 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묵상>
부활 팔일 축제의 끝자락입니다. 이번 한주간 참으로 주님의 부활을 맘껏 느끼고 기뻐하며 생활했는지 돌아봅니다. 사순 시기와 다름없는 한 주간을 보냈든, 진정 기쁨으로 부활 팔일축제를 보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느낌일 뿐이니까요. 물론 우리의 느낌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느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느끼든지 간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무한히 믿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번 한주간 동안 들었던 복음의 종합편(요약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을 보여주시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던한 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완고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의 무감각이 시종일관 대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비로 복음이 끝난다면 우리에게 참된 기쁜소식(福音)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녕 오늘의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참된 기쁜 소식(福音)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예수님께서 마음이 완고하여 제대로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면 가슴 벅찬 거룩한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조금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무엇을 보고 이러한 막중한 사명을 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당신을 드러내셨는데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사명을 맡기시는 예수님의 무모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참으로 배짱이 두둑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겠는가'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행동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계셨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믿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존경을 넘어 어리석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무모함, 예수님의 배짱, 이 모든 것은 제자들에 대한,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에서 나옵니다. 분명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조건없는 믿음, 배신의 행위까지 감싸는 믿음, 불신의 벽마저 허무는 믿음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우리에게 지니신 믿음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믿음이지요. 이 믿음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한두번 아니 수십번이라도 이 믿음을 거슬러 배신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결코 이 믿음을 져버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김 유다는 비록 잘못된 방법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예수님의 믿음이 가진 힘에 굴복하였습니다. 세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는 새벽 닭이 울 때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의 믿음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을 따르던 자신들에게 미칠 위험 때문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던 사도들이 유다인 지도자들 앞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겠는지 한번 판단해 보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사도행전 4,19)라고 당당하게 증언함으로써 예수님의 믿음이 자신들에게 준 용기를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잡아 가두고 박해하던 사울이 물불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증언하는 바오로 사도로 거듭 태어남으로써 예수님의 믿음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 참으로 기쁘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말씀하셔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조건없이 저를 믿고 계신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이 제가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사제로서 살아가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실망하는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저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기억하면서 용기있게 일어서야 하겠지요.
이 글을 읽으실 벗들도 벗들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을 사는 우리의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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