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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을 해야 사랑을 안다(부활 6주일)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5-28 조회수2,386 추천수16 반대(0) 신고

2000, 5, 28 부활 제6주일

 

요한 15,9-17 (나는 참 포도나무)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

 

 

<묵상>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독재자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사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사형당하기 얼마 전 어머니와 약혼녀 마리아를 위해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이제 지상에서는 영원히 이별을 해야 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며 인도해준 모든 선한 능력

온갖 두려움을 넘어 위안과 힘을 주었습니다.

내 곁의 당신을 생각하며 이날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새해를 당신과 함께 맞으렵니다.

 

과거는 아직도 우리의 영혼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들 슬픔의 나날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버지, 시련을 허락하신 영혼들에게

당신이 약속하신 위로와 치유를 허락하소서.

 

슬픔의 잔에서 고통마저 비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당신의 뜻이기에 머뭇거리지 않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당신이 사랑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원하신다면 우리에게 한번 더

삶의 기쁨과 따뜻한 햇살을 맞이하게 하소서.

슬픔에서 배웠으니 그 기쁨은 더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당신께 바쳐집니다.

 

오늘은 촛불들이 기쁨을 비추게 하소서.

보라, 우리의 어둠을 비추는 당신의 빛이 아니신가요?

우리를 간절한 만남으로 이끄시는 빛이 아니던가요?

당신은 가장 어두운 밤도 밝힐 수 있으십니다.

 

이제 침묵은 더 깊어져 가고

당신 자녀들의 노랫소리에 귀기울이게 하소서.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어둠에 싸이고

당신을 찬양하며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선한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니

용기를 내어 미래로 향합니다. 두려움 없이

저녁과 아침에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새 날이 시작될 때마다.

 

이 시를 통해 죽음을 앞둔 고결한 영혼을 만납니다. 죽음의 힘조차 억누를 수 없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 하느님의 정의를 위해 투쟁하였기에 마셔야만 할 슬픔의 잔마저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하느님께 대한 참 사랑을 봅니다. 많은 이들이 침묵으로 불의와 타협함으로써 하느님의 길을 져버릴 때 하느님과 함게 하기 위하여 죽음의 길을 걸어갔던 참 신앙인을 만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나치에 순응할 때, 자신은 히틀러라는 광포한 독재자 통치 하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벗이 되어 이들을 사랑했고 구체적으로 이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알 수 있는 까닭은 인간의 언어를 빌려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표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삼으셨기 때문에,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사랑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 사람에게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압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랑의 계명은 종이 어쩔 수 없이 지켜야만 하는 주인의 명령과 같이 맹목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랑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서로를 나누는 벗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헌신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조차 막을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니 사랑 자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바로 이 사랑을 먹고 자라나며, 이 사랑을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사명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만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결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사랑은 표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미사를 봉헌하는 것, 기도하는 것 모두가 인간적인 겉치레요 위선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봉헌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입니다. 이기적 욕망의 추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지배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우리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드러내야 합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참 사랑이 우리를 살리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느님께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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