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되기 위한 머무름(부활7주 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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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6-08 | 조회수2,780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2000, 6, 8 부활 제7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요한 17,20-26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다)
그 때에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기도하셨다.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며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 사람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아버지께서 천지 창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모르지만 나는 아버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묵상>
사제가 되어 본당에서 사목을 하면서 겪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나이는 먹었어도 아직 새신부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사하고 강론하고 고해 성사를 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체험하고 힘을 많이 얻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가장 큰 어려움일까? 바로 인간 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교우들과의 관계일수도 있지만, 이것보다는 교우들 사이에서 제가 취해야 할 입장 때문입니다.
갈라진 세상을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흩어진 이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특히 온 생을 바로 예수님의 일을 위해 봉헌한 사제로서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저 역시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함을 잘 압니다. 아니 기도할 뿐만 하나될 수 있도록 뛰어야 함을 압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갈라지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무기력함을 가끔씩 체험하게 됩니다. 사이가 벌어진 교우들이 찾아와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정당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할 때면 참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어떻게 화해시키고 중재할 수 있을까? 자칫 하면 어느 한 쪽만 편을 든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척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렇다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뒷짐지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사제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 욕 먹고 잘 해결되면 사실 상관이 없지만, 이런 일로 교회 공동체를 떠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먼저 교우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으려고 합니다. 자신의 답답함 마음을 속시원히 털어놓고 나면 일단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자신이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몇 마디를 건네죠. '누구를 보고 계십니까?'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오십니까?'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등 물어보기도 합니다. 어차피 문제 해결은 당사자가 해야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좀 더 정확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을 하든, 어떠한 마음이나 이유로 교회에 나오든 가장 근본적인 것은 신앙인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신앙인'이라는 뿌리에서 여러가지 줄기가 자라나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저 역시 때때로 이 뿌리를 잊어버리고 인간적인 감정과 입장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만, 끊임없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 봅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교회이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임들이 어디 한 두가지겠습니까? 적어도 그 모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임'을 표명할 수밖에 없죠. 세상의 모든 모임, 가정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이기 위해서는 여기에 하나가 더 필요합니다. 아니 이 하나됨을 가능하게 하며, 하나됨의 참된 의미를 밝혀 줄 보다 근본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울타리안에 있으면서도, 하느님 안에 있지 않으면서 인간적인 차원에서 하나됨을 이루어낸다고 하면, 다른 이익 단체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하느님을, 복음을, 교회를 믿게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나되고자 하는 신앙인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인임을 잊어버리고 인간적으로만 친교를 이루고자 하는 신앙인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적인 갈등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신앙을 버리고 교회 공동체에 등을 돌리는 약한 신앙인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시는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우리 자신의 기도로 삼아 간절히 주님께 바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인간적인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크고 작은 상처를 서로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교회 공동체의 현실이지만, 진정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힘이 들더라도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뿌리에 붙어있기 위해 몸부림친다면 희망이 있음을 생각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묵상글을 읽어주신 모든 형제 자매님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회신을 주신 모든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가끔씩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묵상글을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다음주 목요일까지 사제 연례 피정을 갑니다. 열심히 피정하고 나와서 보다 더 성숙하고 충만한 모습으로 만날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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