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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의 눈물(성모 성심 기념일)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7-01 조회수2,740 추천수17 반대(0) 신고

 

2000, 7, 1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복음 묵상

 

 

루가 2,41-51 (예수의 소년 시절)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아들이 일행 중에 끼여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 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묵상>

 

혹시 어머니의 눈물을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힘겨움이나 약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속으로 눈물을 흘리신다고 합니다. 사실 어머니는 우리가 자라나면서 기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기둥이자 작고 약한 우리를 품에 꼭 안으시는 편안한 둥지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강인함', '따뜻함'입니다. 어떠한 세상 풍파도 감히 쓰러뜨릴 수 없는 굳셈을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것이 단지 저 혼자의 체험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의 기억 속에 어머니의 눈물은 흔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삶이 편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이 시대가 그러하듯, 제 어머니도 험난한 삶을 사셨고, 남몰래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다만 드러내지 않으셨을 뿐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어머니의 눈물이 두 번 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느냐 마느냐 대학 생활 초반부터 고민하던 저는 7년 남짓 계속된 고민의 종지부를 찍고, 회사 생활 4년 반만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었죠. 부모님과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일단 회사를 그만 둔 것입니다.

 

지금도 그 날짜, 그 상황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1992년 6월 말 경에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어 8월 10일 퇴직을 했습니다. 퇴직일을 앞두고 매일 회사에 있던 책이나 자료들, 개인 비품을 조금씩 조금씩 집을 옮겼는데, 보모님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셨습니다.

 

8월 10일, 저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된 회사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동료 선후배 직원들과 진탕 술을 마셨죠.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쉬운 시간이었죠. 그리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8월 11일,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둔 사실을 모르시는 어머니께서 깨우시더군요. "출근 시간 되었다. 어서 일어나. 지각하겠다." 제가 자리에 누운 채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오늘부터 여름 휴가예요. 그래서 회사 안가요." "그래, 그럼 푹 쉬어."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쉴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로 부모님께 퇴직한 사실을 알려야 할지 하루 종일 고민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신학교를 가고 싶었느데, 제가 준비가 덜 된 탓도 있지만, 부모님도 반대를 하셨기 때문에 신학교를 갈 수 없었습니다. 혹시 신학교를 가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하면 부모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실지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이리 저리 뒤척이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8월 12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퇴직 후 이틀째, 부모님께서 알기로는 저의 휴가 이틀째 날이죠. 어머니는 저를 깨우지 않으셨습니다. 이래 저래 바쁘게 생활하는 저에게 모처럼을 충분한 휴식을 주시기 위한 배려였지요. 그러나 자리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급한 얘기가 아니면 하루 푹 쉬고 저녁 때 이야기하지 그러니." "아니요, 지금 말씀드려야 해요." 시간을 끌어봐야 소용이 없음을 알기에, 이른 시간이지만 제가 걷고 싶은 길에 대하여 말씀을 드려야 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 이제 회사에 나가지 않습니다. 회사 그만뒀습니다. 휴가라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부모님은 당연히 놀라셨죠. 아버지께서 물으셨습니다. "너,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혹시 문제가 생겨 짤린 것은 아니니?" 제가 회사에서 열성적인 노조원으로, 노조 사무장을 맡으면서 노조 전임을 한 것을 아시는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올 법한 물음이었습니다.

 

"아니요, 회사에서는 계속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제가 나왔어요. 부모님의 자식인데 제 앞가림 못해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겠어요." "그럼, 앞으로 뭘 할거니?"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무슨 공부?" "신학 공부를 하고 싶어요." 침묵이 흘렀습니다. 신학 공부라는 것이 사제의 길을 걷고 싶은 저의 희망과 원의를 담고 있음을 부모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어떻게 사람이 막을 수 있겠니. 열심히 해 봐라." 거의 20년이 넘게 냉담을 하고 계셨던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은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하고, 자칫 저 하나로 인해 가정이 혼란스러워지지는 않을까 염려했었는데,  저의 염려는 우스운 기우일 뿐이었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참된 삶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기층 민중들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아버지와 저 사이에 오고 갔습니다.

 

아버지와 저 옆에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없이 계셨습니다. 차마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의 많은 대화보다 어머니의 침묵과 눈물이 저에게는 더 가슴 저미게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모든 것 -  저의 생각, 신념, 제가 걸어가야 할 길, 그 길을 걸어가면서 제가 감내해야 할 고통 등 - 을 당신의 눈물에 담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제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어머니의 첫 번째 눈물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99년 7월 7일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부모님께서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저 역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사제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가 한 평생 살아가면서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선물을 드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의 기쁨도 더욱 커졌죠. 이 날 어머니의 눈물을 볼 수 있을 법도 한데, 어머니의 눈물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서품받은 감격과 흥분 때문에 어머니의 눈물을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7월 11일, 평생 잊지 못할 감격적인 첫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비록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목이 메여 주춤한 적도 있고, 손끝이 떨리기도 했습니다. 신자석 맨 앞에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앉아 있어지요. 미사 중간 중간 가족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7년 전 그날처럼 어머니께서는 말없이 눈물로서 사랑하는 아들 신부가 드리는 첫미사에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아들 신부를 당신의 품 안에서 떠나보내고, 어머니께서는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시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마음 안에서는 항상 저 자신을 품고 계시겠죠. 사제로서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혹시 사제로 생활하면서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본당 식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아들이 사제가 된 후 더 많이 기도하며 고민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일 겁니다. 어머니의 눈물 속에 담긴 마음 말이지요.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성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함께 계심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인 오늘, 어머니의 마음을 한 번 헤아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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