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순교는 두려운 것, 그러나...(성 김대건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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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7-05 | 조회수2,709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2000, 7, 5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마태오 10,17-22 (박해를 각오하라)
그 때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법정에 넘겨 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조심하여라.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잡혀 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쳥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또한 제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묵상>
유아영세를 받은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대개 유아영세를 받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3-4학년 때 첫영성체를 하는 것에 비추어보면 무척 늦은 것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성당을 다니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냉담을 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다시 성당을 나가게 되었을 때에 너무나도 기쁨에 넘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주일이 너무나도 기다려졌죠. 미사를 드리는 것도 주일학교에서 교리를 하는 것도 제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당시 제게 두렵게 다가오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순교였습니다.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제 자신도 모르게 순교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것이 한 동안 제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이 생각 때문에 두려움을 넘어서 혼돈스럽기조차 했습니다. 머리로는 '당연히 순교해야지'라고 하면서도, 가슴에서는 선뜻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어.' '아니야, 해야 돼.' '할 수 있어.'..... 어떤 날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이 바뀌면서 흔들리는 제 자신을 잡아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지요.
박해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당시에 왜 '순교'에 대해서 집착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와서 돌아보면 그 당시의 고민과 갈등이 저의 신앙 생활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제의 길을 선택한 것도 '순교'의 맥락에서 조금은 이해하고 싶습니다. 물론 주님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사제가 될 수 있었지만 말이지요.
제 자랑을 하는 것 같아 조금은 쑥스러운 일이지만, 제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제가 사제가 되고자 신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이런 말을 많이 했습니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잘 다니다가 왜 갑자기 사제가 되려고 하느냐?' 라는 말이죠. 사제의 삶이 힘들기에 저를 걱정하면서 하는 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좋다'라는 것을 정말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말 좋은 것은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주님의 백성을 위해 내어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참 좋은 몫을 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고대하던 사제가 되던 날, 저는 서품식 미사 동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순교하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이끄심이었겠죠. 기도할 줄 모르는 저를 대신해서 성령께서 그렇게 기도해 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육신의 생명을 바쳐야 하는 박해 상황과는 다르지만, 오늘도 또 다른 형태의 순교가 믿는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자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하느님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의 현장 한 가운데서 살아가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를 일구기위해 헌신하려면 당연히 세상과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순교'를 생각하면 두려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저를 위축시키지는 않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 안에서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고 살아갈 때, 알게 모르게 삶 안에서 주어지는 작은 순교의 순간에 당당하게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순교의 삶이 하나 하나 모아질 때, 큰 순교, 결정적인 순교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얻게 됩니다.
"너희를 법정에 넘겨 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조심하여라.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잡혀 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믿음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 즉 순교는 두려운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는 것이든, 인간적인 욕망을 버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든, 노도와 같은 세상을 거슬러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또한 순교는 모든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순교는 자신의 의지 이전에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신앙인이기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은 일이 바로 순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지는 주님을 따르는 순교의 길과 주님보다 자신과 세상을 따르는 배교의 길 가운데서 참으로 올바르고 값진 길을 선택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삶 자체가 순교의 삶이 될 수 있도록 가꾸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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