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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인의 벗이 되기(연중 제13주 금)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7-07 조회수2,165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0, 7, 7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9,9-13 (마태오를 부르심)

 

그 때에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나섰다.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세리와 죄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묵상>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는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어린 생각에 더 이상 학교를 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한 수업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 무섭기로 소문난 선생님의 시간이었습니다. 한 학생이 수업에 늦게 들어왔습니다. 학교에서 유명한 '노는 아이'였던 그 친구는 양호실을 갔다왔다고 했지만, 사실 담배를 피우고 늦게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험악한 말씀이 봇물터지듯 튀어나왔고 우리 반 친구들 모두 고개를 떨구고 침묵 속에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반장이던 저는 도저히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정중하게 항의를 했죠. 저는 당연히 수업이 끝나고 학생부실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에서 선생님과 저 사이에 또 한바탕의 설전이 벌어졌죠. 선생님도 저의 태도에 대해 당혹스러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선생님과 저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 선생님과 이 일 이후 4년이 지난 대학교 2학년 때 화해를 했습니다.), 저는 당시 학교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한동안 '우상'(?)이 되었습니다.

 

이 일은 학교 교육에 대해 그 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더욱 굳게 했습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 말 잘 듣는 학생 중심의 교육. 부족한 학생, 문제투성이의 학생, 공부 못하는 학생은 나 몰라라 하는 교육. 똑같이 담배를 피고 술을 마셔도 누구는 용서를 받고, 누구는 단죄받을 수밖에 없는 교육 환경.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철저히 순환되는 교육 환경 등.

 

모범생이었던 저였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학교에서 포기한 학생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지 의문스럽습니다. 물론 학교 나름대로 선생님 나름대로 교육적 차원에서 방향이 있었겠지만, 그 당시 저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것이 불합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 둘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이지요.

 

물론 지금도 이러한 생각이나 느낌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더 심각한 현상을 무수히 보아왔고 그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격리시키고, 사회의 부조리가 양산한 추한 모습을 없애버리겠다고 못사는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죠. 상계동, 목동, 왕십리로 이어지는 죽음의 강제 철거가 그랬고, 대책없는 노점상 말살 정책이 그랬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깨끗한 서울을 만들겠다고, 서울을 더러운 부분을 밖으로 밖으로 몰아냈지요. 그래서 가진 자들은 더 깨끗해졌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더욱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의 겉모습은 깨끗해졌을지 몰라도, 이미 더불어 살기를 거부한 사람들의 양심은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더러워졌습니다.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 더러운 것을 치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선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악한 것을 잘라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적어도 사물에 있어서만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에는 다름니다. 쓰레기는 폐기처분해야 하지만, 어느 곳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에 비견되는 사람은 비록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해도 인간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폐기처분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더러운 부분을 정화시켜 깨끗하게 만들고, 그 사람이 악한 것을 포기하고 선한 것을 추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품에 안아야 합니다.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지 말아야 한다."

"죄인들과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선한 사람, 거룩한 사람이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있어서 깨끗하고 선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그들의 깨끗함과 선함을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것을 깨끗이 만들고 악한 것을 몰아내어 선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세상에는 항상 어느 정도는 더러운 것, 죄, 죄인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상에는 모두가 깨끗하고 모두가 선한 것이 됩니다. 당장에는 그렇지 않더라도 모두가 깨끗하고 선하게 되는 날을 향해 나아갑니다. 더러운 것이 더러운 것으로 남아있지 않고 깨끗하게 되어지고, 죄인들이 죄인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으로 거듭 나도록 품에 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세상이 단기간에 가시적으로는 분명한 결실을 맺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실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세상은 요원하게 보이고 헛된 꿈처럼 다가올 지 모르지만 그 결실은 완전한 것입니다.

 

모든 이들, 특히 인간 세상에서 배제된 사람들, 못난 사람들, 부족한 사람들,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을 보듬어 안고 멀리 보이는 예수님의 세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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