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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구를 떠나고 싶은 부시맨
작성자황인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0-07-30 조회수2,636 추천수24 반대(0) 신고

지구를 떠나고 싶은 부시맨

언제부터인지 누군가가 나를 ’부시맨’이라고 불러주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인 닮았다는 말이 불쾌하기 그지없었지만 점차 부시맨의 순수함에 매료되어 지금은 자랑하는 별명이 되었다. 부시맨은 원시림 속에서 현대 문명에 때묻지 않은 사람을 상징한다. 그야말로 자연과 가장 일치되어 살아가는 사람이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낙원에서 추방당하기 전의 아담과 이브다. 이런 별명을 갖고 살아서인지 요새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산골을 도시에 비하면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자연환경이 절대적으로 보존되어 있어서 올 여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도 이곳도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성당 앞개울에는 무릎까지 차는 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있다. 깊은 산 속에서 발원된 물이라서 발에 물을 담그고 싶은 마음에 휴양객들은 얼른 내려간다. 그러나 곧 실망하면서 발길을 되돌려 나오기가 일수이다. 마을에서 내려오는 각종 생활오수로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양옆 개울가에는 각종 비닐이 널려있고 어디서부터 내려오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청정하기로 소문난 강원도 산골 계곡이 이 모양이니 다른 곳은 두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지난 22일 집중 호우로 피해를 본 용인지역은 자연을 파괴한 인간의 가장 어리석은 결과다. 사람들은 아파트 건설업자와 당국에게 책임이 있다고 소송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우선 땅을 판 사람들과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니 이제 환경에 대한 문제는 어느 특정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또 팔당댐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한강 상류에서 호우로 씻겨 내려온 수많은 쓰레기에 대해서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구 버린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행락객들이 계곡에서 야영을 하면서 버린 쓰레기들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공해와 무더위를 피해서 아름다운 산과 계곡에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였으면 누구보다도 자연을 깨끗이 보존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공짜로 실컷 이용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배은망덕행위를 하다니 이게 될 말인가?

 

오늘 가톨릭 신문에 실린 칼럼에서 어느 교수님이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무당 방류한 것은 모두 우리의 책임이라고 역설하였다. 맞는 말이다. 금수강산을 쓰레기천국으로 만들고 있는 나라에서 그까짓 독극물이라고 해도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같이 환경에 대한 관리가 철저한 나라에서 아무리 주둔군이라고 해도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해안 갯벌은 각종 오폐수로 썩어 들어가서 더 이상 정화능력을 상실하고 있고, 남해안에는 ’유기 주석’이라는 중금속으로 고래가 죽어서 해안선으로 떠밀려오고 있고, 동해안에는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던져버리고 있다고 한다. 육지에서는 각종 농산물이 생산되지만 사람이 먹으면 먹을수록 각종 병을 유발하는 ’농약배추, 농약무우, 농약오이’ 등이 생산되고 있을 뿐이다. 가장 정직해야 할 농민들도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도시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생계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구에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정도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지구를 하루 속히 떠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나도 지구 생태계파괴를 매일 할 수밖에 없는 죄를 짓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식사 때만 해도 우유와 치즈를 포장했던 쓰레기, 시장에서 토마토를 몇 개 사오면서 싸온 검은 비닐봉지 쓰레기를 버리면서 또 죄를 지었다. 또 설거지를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지만 설거지를 하면서 적당히 흘려버리는 생활오수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서 오일교환 때 나오는 폐오일, 배기가스에서 배출되는 수많은 중금속 등은 내가 얼마나 대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 많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문명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구를 떠나서 나를 반겨줄 다른 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지구를 떠나지 못하면 최소한 자연인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부시맨이라는 별명을 받게 된 것은 분명 하느님의 뜻이 있어서다.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다고 특히 사제로서 영혼 구원을 해야하는 사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내게는 더 중요한 것이 하느님이 창조하신 대자연의 질서를 보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죄를 덜 지으면서 살 수 있는 길은 자연친화적인 삶에서만 가능하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면서 기도를 빼먹지 않으며 착하게 살아간다고 하지만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않고서는 죄짓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일찍이 아놀드 토인비 같은 위대한 역사학자는 지금부터 50년 전에 이미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사상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을 한 다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다. 그 중에 하나가 먹을 것에 대한 즉 생존에 대한 욕망에 대한 시험이었다. 마구가 극도로 허기지신 예수님에게 돌을 빵으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신다. 먹을 것을 위해서 즉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인간의 거룩한 품위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현대인들은 인간의 품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생명만 유지하려고 한다.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다. 오늘 복음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신 것은 단지 군중의 굶주린 배를 채우려는 생물적인 기적이 아니다. 한 어린이가 내어놓은 작은 행위가 엄청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피서철을 맞이해서 전국의 산과 계곡과 바다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버린 작은 쓰레기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야 할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올 여름에는 어찌된 일인지 성당 주변의 나무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극성스럽게 들린다. 섭씨 30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운다는데 그 말이 맞는가 보다. 저 아름다운 매미들의 대합창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이 우주를 만드신 하느님께 봉헌하는 연주회로 들린다. 사제관에서 아침마다 매미들의 기상 합창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서 하루를 시작하면서 자연이 주는 온간 혜택에 대해서 더욱 감사하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자고 끊임없이 외치고 싶다. 비록 내 목소리가 대답없는 메아리가 될 지라도 현대문명 속에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이것이라고 확신한다. 저 아름다운 매미 소리가 그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한다면 후회없는 나의 삶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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