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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듣는 신앙(연중 23주일 강론)
작성자황인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0-09-10 조회수2,862 추천수22 반대(0) 신고

듣는 신앙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성당에 어느 본당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런데 그 성당에는 80세가 훨씬 넘은 할아버지 교우 한 분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러 오셨다. 본당신부는 미사 전에 잠시 성무일도를 하면서 묵상하는 것이 하루의 기도시간의 전부였다. 자신이 성직자이면서도 하루에 30분도 안되게 기도하는데 할아버지는 하루에 2시간 이상씩 기도하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어느 날 본당신부는 기회를 보아 기도를 하고 나오시는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할아버지, 매일 무슨 기도를 그렇게 정성껏 하세요?

혹시 할아버지의 기도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 저도 좀 배우겠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이 늙은이가 무슨 기도를 할 줄 알겠습니까?

저는 그저 한 시간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느님도 제 기도를 듣고 계시고요."

하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듣는 것은 신앙의 첫째 조건이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생긴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별로 없다. 하느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그분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데 우리는 기도한다고 하면 그전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런 시도는 올바른 기도방법이 아니다.

 

인관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마음이 있을 때 대화가 된다. 요새 많은 본당에서 전교를 하자고 구호를 외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처럼 그렇게 우리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 교회가 먼저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비복음적으로 흘러가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당에 다니라고, 그리고 하느님만 믿으면 복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전교를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개신교 신자들이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하고 외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울리는 꽹과리처럼 시끄럽게 생각한다. 나는 그 이유를 전도를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먼저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런 전도 방식은 오히려 교회에 거부감만 갖게 하고 오히려 거리질서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해도 그들은 막무가내이다. 자신들의 말을 들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술좌석에도 자주 일어난다. 술에 취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세, 내 말좀 들어봐"라고 소리 높인다. 상대방이 이야기는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고 자신의 말만 들어달라니 대화는 단절되고 급기야 싸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현상들도 대부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자세에서 발생한 것이다. 여당과 야당이 한 달 이상 극한적인 대치상태인 것도 의료계와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잡고 대립하고 있는 것도 모두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세기 이상 적대관계에 있던 남북도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자마자 화해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신 이야기가 나온다. 반벙어리는 말을 못하는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시청각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책이나 비디오를 보면 되지만 당시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혀 들을 수 없었기에 반벙어리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치유시켜 주심으로써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더 이상 죄인으로 살아가지 않게 되었다.

 

또 귀먹은 반벙어리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던 그가 이제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자, 그는 한 사람의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라고 치유순서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도 할아버지처럼 내 말을 들어달라고만 하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기도방법을 배우자. 성당이나 골방에서 몸자세를 올바르게 하고 조용히 앉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기도이다.

 

이웃에게 전교를 하고 싶으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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