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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0-09-21 조회수2,188 추천수17 반대(0) 신고

9월 21일 : 성 마태오 사도 축일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오늘은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 대축일을 잘 준비하기 위해

기도이어가기 찬조를 위해 수원에 있는 한 가족 수녀회에 다녀왔다.

오늘의 주제는 <일, 땀, 노동>이란 주제였다.

기도모임에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많은 고심을 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이러한 고민중에 어느 자매와 전화를 하면서

<노동의 완성은 휴식>이라는 명쾌한 답을 찾고서

자신있게 출발하였다.

 

수도생활의 3대서원이 순명, 가난, 정결이지만

실제적으로 수도생활의 3대 요소라면, 기도생활, 공동체생활, 사도직생활이라 할 수 있다.

이중에서 어느것이 가장 중요할까라는 우문을 던지면....

어떤 것이 가장 어렵고 힘드냐고 물으면...

 

오늘날 많은 수도자들은 기도생활이 잘 안되고 있음을 통탄해하고 있고,

공동체생활이 갈수록 힘들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사도직 생활이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같다.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 기도생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도직생활 때문이기도 하다. 과도한 활동주의야말로 기도생활의 장애꾼이 아니던가!

먹고살기에 급급하다보니 기도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많은 평신도들도 기도를 못한다고 고백한다. 살다보니...

 

공동체생활이 어렵고 힘든 것도 알고보면 사도직생활과 직결되어 있다. 사도직에서 오는 미묘한 갈등들이 공동체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바깥일이 집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기도생활과 공동체생활(가정, 수도원...)이 문제가 있다면 그 자체문제이기보다는 사실은 사도직(일, 직장, 노동)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음은 왜일까?

 

사도직이나 직장생활이 때론 어렵고 고달프긴 해도 나의 성취감과 보람을 얻게해주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이라 하지만 그래도 가족을 부양한다는 뿌듯함이나 보람같은 것이 있다는 이야기일테지...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적생활의 핵심인 기도생활과 공동체 생활에 영향을 나쁜 쪽으로 미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나의 사도직, 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디....

그게 뭘까?

뭐가 문제일까?

 

우선 일, 노동, 사도직의 원래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충 주섬주섬 섬겨보자.

 

먼저,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고귀한 행위이다.

하느님께서도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일하셨다. 따라서 우리의 일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계속하는 것이리라. 근데 하느님께서는 일하시면서 <보시니 좋더라!>를 연발하셨다. 나는 일하면서 <신바람나게> 일하지는 않은 것같다. 어쨌든 이렇게 고귀한 일인데 말이다.

 

또한 노동은 무엇보다도 <생계유지의 일차적인 수단>이다. 인간은 원죄이후로 땀흘려 일해 먹고 살아야만 한다. 사도들도 손수 일하며 먹고 살았다. 부족하면 얻어먹어야지만...

이렇게 우리는 땀흘려 가족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보람으로 일하여야 한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노동(일, 사도직)은 <휴식>(놀이)으로써 완성된다는 점이다.

하느님은 창조사업을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이렛날은 휴식을 취하셨다. 휴식없는 창조사업은 그 원래의 의미를 왜곡시켜 오히려 황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의 발전과 성장의 미명으로 저질러지는 무분별한 개발사업들은 오히려 인간과 자연을 황폐케 하지 않는가? 이는 원래의 의미에서 창조활동의 계속이 되지 못한다.

휴식은 필수이다.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한국사람, 일본사람은 일벌레라고들 한다. 돈벌기 위해 쉴줄을 모른다. 휴식의 중요성을 모른다. 수도자들은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월피정을 갖고 1년에 최소한 7주일 정도의 연피정을 의무적으로 갖는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데, 쉴 여유가 어디 있냐고 할른지 모른다. 그러나 참다운 휴식은 우리의 사도직을 <참으로 보시니,좋더라!> 하게 만들어 준다. 이럴 때 우리의 사도직, 우리의 일은 창조사업을 계승하는 것이 된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가지인 너희는 나무인 나를 떠나서는 결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는 사도직과 봉사, 그 어떤 애덕활동도 주님과 더불어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결실이 없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아무리 거창한 활동을 한다하더라도 그일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면 진정한 영적 결실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기도생활과 공동체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는 바로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하되 어떻게 일하느냐에는 문제를 잘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일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이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이 일은 기도생활에 장애가 된다. 공동체생활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반대로 하루 24시간 무슨 일을 하던간에 그분이 나와 함께 일하신다는 것을 늘 의식하는 사람은 그 일이 기도생활을 윤택하게 해 준다. 그분과 함께 일하면서 대화하고 나누지만, 우리의 미사와 성무일도 시간은 그분께 진정으로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시간이겠고, 우리의 묵상과 성체조배 시간은 바로 그분과 못다한 대화를 보다 깊이 애정을 갖고 나누는 시간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공동체는 바로 오늘 나와함께 해 주신 주님의 여정과 손길, 즉 그분이 나를 통해 하신 일에 대한 나눔의 공간이 된다. 그 기쁨을 함께 나눔으로써 기쁨은 배가 된다. 이렇게 수도공동체든 가정공동체든 이제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며 주님의 현존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때까지 <그분과 함께> 있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청소를 하든, 빨래를 하든, 밥을 짓던, 반찬을 만들던, 성당에 가서 전례에 참석하든, 친구들 끼리 모여 대화를 하든, 봉사활동, 애덕활동을 하든, 직장에서 근무하거나 사도직활동을 하든, 그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

그분이 나와 함께 있음을 의식하라!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일임을 생각하라!

 

그러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계승하는 일이 되고

나의 기도생활은 윤택해 지고

나의 공동체 생활은 기쁨과 웃음으로 가득차게 되리라.

암, 그렇고 말고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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