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의 꾸짖으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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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민철 | 작성일2000-10-03 | 조회수2,331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고 나서 일행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다."
어제 한 아랍소년이 숨졌습니다. 라미라는 이름의 이 12살 소년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대립격화로 휴교령이 내려져, 아버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중고차 매매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시위현장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시위가 치열해 지자 겁을 먹은 택시기사는 그들 부자를 내리게 하고는 그냥 가버렸다는데, 이렇게 해서 그들은 양측이 팽팽히 맞서는 시위현장 한가운데에 놓여 지게 되었던 것 입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소년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있다며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울부짖었으나,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경찰은 이에 아랑곳 않고 계속 총탄을 퍼부어 대었고, 결국 어린 라미는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대종교에서 말하는 개천절입니다. 문득 얼마전 있었던 개신교-대종교간 불미스런 사건들이 생각납니다. 대종교측에서 전국의 초등학교에 300여기의 단군상을 기증하게 되었는데, 이에 반발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특공대를 조직하여 단군상의 목과 팔을 절단해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개신교-대종교. 이들 양자간 옳은 자는 누구이며, 옳지 않은 자는 누구일까요. 비슷한 문제들로 수많은 대립과 충돌이 있었고, 현재 진행중에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진작 중요한 것은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누가 옳은지는 하늘에 계시는 주님밖에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맞아들이지 않는다하여 그 사람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여쭙는 제자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당신께 대한 충성만을 생각하여 당신 사업에 방해가 되고, 고깝지 않은 것들을 없애버림으로써 당신으로부터 칭찬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옳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을 폭력으로써 제압하고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것... 그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며, 저급한 우리 문명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하지만 화내시거나 종용하시지 아니 합니다. 다만 몸소 보여주셨을 따름입니다. 옳으신 당신께서는 옳지 않은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당신 권능은 능히 어린 백성들을 휘어 잡고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끄실 수도 있었으나, 당신께서는, 왕이신 당신께서는 매맞으셨고, 가시관을 쓰셨고, 창과 못에 찔려 피흘리셨으며, 고통속에 돌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셨습니다.
폭력은 그 순간만큼은 강하나, 지속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서도 우리는 이 사실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멸망, 제정 러시아의 붕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을 부르짖던 여러 공산정권들의 몰락에서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는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진리들이 있지만, 그러나 진리는 오직 하나뿐이며, 하나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주장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반드시 그 주장의 진리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 아닌 것들에 의해, 진리는 상처받지도, 그럴 수도 없으며 (그렇다면 이미 진리일 수도 없기에), 오히려 그중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만유 위에 지당하신 주님, 이 우주에 최선이시고, 의당 교만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당신이시나, 당신은 교만치 않으셨고, 겸손하셨으며, 보여주신 모습은 차라리 누추하고 가난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당신 사랑이 모든 증오와 폭력, 오만에서부터 저희를 지켜 주심을 믿사옵고, 그들을 감싸 안아 모두가 진정 하나될 수 있기를 바라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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