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의 평화, 세상의 평화(성 루가 축일) | |||
---|---|---|---|---|
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10-18 | 조회수2,447 | 추천수26 | 반대(0) 신고 |
2000, 10, 18 성 루가 복음사가 축일 복음 묵상
루가 10,1-9 (일흔 두 제자의 파견)
그 때에 주께서 달리 일흔 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마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집 저집으로 옮겨다니지 마라. 어떤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환영하거든 주는 음식을 먹고 그 동네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 나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고 전하여라."
<묵상>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예수님에 앞서 파견되어 길을 떠나는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평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평화는 나누는 것이지 결코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간절한 염원으로 품에 안는 것이지 결코 누군가로부터 억지로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의 사도'로 불러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평화를 나누는 작은 자가 되기를 다짐하면서, 예수살이 공동체 소식지 제13호(2000, 6,5)에 게재했던 보잘것없는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의 평화, 세상의 평화
세상은 평화를 원한다. 세상은 평화를 말한다. 가부장적인 횡포 앞에서 며느리의 침묵은 가정의 평화요, 재벌 자본가의 횡포 앞에서 힘없는 노동자의 침묵은 경제의 평화요, 안하무인인 정치권력의 횡포 앞에서 국민의 침묵은 사회의 평화요, 권위주의적 성직자의 횡포 앞에서 신자의 침묵은 교회의 평화요, 총칼을 앞세운 강대국의 횡포 앞에서 힘없는 나라의 침묵은 세계의 평화다. 굴종과 침묵은 곧 세상의 평화다. 힘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자들은 평화를 누리고 힘없는 자들은 평화를 강요당한다.
예수님은 평화를 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평화를 말하지 않으신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평화는 강요할 수도, 강요당할 수도 없는 것 평화의 이름으로 자행된 온갖 억압을 뒤집어야 한다. 침묵하지 말라. 굴종하지 말라. 더 이상 평화는 없다. 분노하라. 일어나라. 깨뜨려라. 그리고 다시 세워라.
예수님은 평화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평화를 말하신다. 예수님은 평화를 주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요한 14,27) 평화는 부활을 희망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예수님의 선물이다. 참 평화는 거짓 평화를 부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예수님의 선물이다. 이 선물을 누릴 자 과연 누구인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믿음의 벗들과 함께 주님의 평화를 나누는 밀알이 되기를 희망하며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