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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억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연중 28주 금)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10-20 조회수2,431 추천수23 반대(0) 신고

 

2000, 10, 20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루가 12,1-7(위선에 대한 경고, 두려워해야 할 분)

 

그 무렵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서로 짓밟힐 지경이 되었다. 이 때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들의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말한 것은 모두 밝은 데서 들릴 것이며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것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나의 친구들아, 잘 들어라.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더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겠다. 그분은 육신을 죽인 뒤에 지옥에 떨어뜨릴 권한까지 가지신 하느님이다. 그렇다.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이다.

 

참새 다섯 마리가 단돈 두 푼에 팔리지 않느냐? 그런데 그런 참새 한 마리까지도 하느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 두셨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그 흔한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묵상>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대학교 4학년이던 저는 본당 후배들과 함께 공정선거감시단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선거 당일 투표소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공정선거 구호를 외치면서 신성한 한표를 호소했습니다. 그러다 당시 여당 소속의 당원들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불법이라며 경찰서로 끌고가려는 그들에게 맞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우리에게 정의를 향한 열정과 양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양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투표가 끝나고 우리는 개표소로 향했습니다. 투표소에 나눠져 있던 이들이 하나 둘씩 모이면서 개표소 앞은 어느새 대중집회장으로 변했습니다. 여기저기 승리의 구호가 외쳐지고, 우리는 감격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개표소였던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투표함을 실은 버스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바뀌었습니다. 전경들과 대치한 상태에서 밀고 당기는 힘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저는 맨 앞에서 전경들과 맞선 상태가 되었고, 한 손으로는 방패를 밀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려치는 곤봉을 막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뒤에서 밀어대는 시위대와 앞에서 곤봉과 방패로 힘을 과시하는 전경 사이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극심한 갈등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어떻게 마련한 기회인데... 부정 선거를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야 한다...." "뒤에서 밀어대는 사람들이 야속하다. 무작정 밀어대면 맨 앞에 서있는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앞에서 쓰러지면 뒤에서 계속해서 함께 하겠지....""두렵다... 어차피 이피 결론이 난 싸움... 이 싸움이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가 더..."

 

수치스럽게도, 비겁하게도 그날 두려움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은근 슬쩍 본당 후배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피했던 것입니다. 그날 밤 참으로 쓴 소주를 입에 털었습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격전의 현장을 빠져나온 비겁한 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죽이려 달려드는 이들이 두려워 진정 두려워해야 할 하느님의 정의를 외면하고 현실에 굴복했던 쓰라린 기억,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기억들을 오늘 애써 다시 떠올려 봅니다. 다시는 그때의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 또 다시 그 날과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지 모를 일입니다. 이 세상에 불의가 존재하는 한 그 날과 같은 상황에 마주서겠지요. 세상의 권력자들이 죽음과 침묵 가운데서 하나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침묵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불의한 권력자들과 세상 구조로부터 내쳐지고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이 시간 주님께 기도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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