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름다운 가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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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인찬 | 작성일2000-10-21 | 조회수2,382 | 추천수21 | 반대(0) 신고 |
아름다운 가을
내 이 산골짜기로 발령을 받아서 온 이후 5년 동안 단풍구경 하려고 설악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특히 가을이면 날마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 형형색색 물들어가는 가을 단풍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요즘 같이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는 가을 정취에 잠시라도 눈을 돌리기 싫어질 정도이다. 깊어가는 아름다운 가을을 바라보면서 진정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 때문에 이렇게 감동하는 것인지 내 자신에게 물어보게 된다. 봄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생명력의 신비함을 마음껏 연출하며 시작된 자연은 온갖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의 여름을 이겨내고 이제 그 찬란한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 강원도 산악지대의 단풍이 더 아름다운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맑은 공기와 낮기온과 밤기온의 차이가 큰 데 있다. 평야지대에도 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역시 단풍이 짙게 물들지 않는 것은 기온의 차이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공기도 맑지 않다는 증거이다.
겨울에 강원도에 처음 올 때 일이었다. 내 고향 강화도에는 감나무가 많아서 늦가을이면 할아버지하고 감따는 게 큰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연시를 따먹으러 감나무에 올라가다가 떨어져서 팔이 부러진 적도 있다. 감나무는 특히 약해서 함부로 올라가면 안되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할아버지하고 감을 망태기에 잔뜩 담아가지고 가서 저녁에는 석유 등잔불 밑에서 껍질을 베꼈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는 할 생각도 못했다. 이삼백개를 뻬껴서 놓고 학교에 갔다오면 할아버지는 그 감들을 일일에 실에 꿰어 사랑채 처마 밑에 걸어놓으셨다. 멀리서 보면 예쁜 그림같이 보이는 곳감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강원도에는 감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높은 산 때문에 일조량도 부족하고 너무 춥기 때문이다. 이것을 몰랐던 나는 기차길 옆에 늘어서 있는 대추나무들이 감나무라고 생각했다. 형태가 감나무와 비슷해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감나무라고 믿기 십상이다.
강원도에서 나는 대추는 맛있기로 유명하다. 산책길에 남의 집 담 밖으로 뻗어있는 대추를 따먹는 재미는 어렸을 적에 남의 집 참외서리를 하던 스릴을 지금도 느끼게 해준다. 대추가 풍성하게 열리는 해는 낮기온과 밤기온의 차이가 큰 해이다. 올 해가 바로 그런 해인가 보다. 나무들이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으려면 그만큼 모진 날씨의 시련들을 겪어야 한다.
옛날 옛적에 신(神)과 사람이 함께 살던 시대가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필요하면 이웃에 살고 있는 신에게 찾아가서 청하곤 했다. 사람들이 문턱이 닳도록 너무 귀찮게 찾아오자 신은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믿거나 말거나). 바로 그 시대에 호두나무 과수원 주인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 주인이 신을 찾아가서 이런 요청을 하였다. 올 한 해만 자기에게 날씨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권한을 달라는 것이었다. 날씨의 권한은 신에게만 있다고 해도 주인은 떼를 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허락을 하고 말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날씨를 마음대로 주무르자 호두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호두가 풍성하게 열렸다. 너무 기뻐서 주인은 가을에 수확해서 창고에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호두가 잘 여물었는지 망치로 두드려서 깨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었던 것이다. 황당무개한 주인은 신에게 쫒아가 따졌다. 그러자 신은 "비바람을 이겨내고 뜨거운 태양 속에서 열매가 알차게 열리는 법이라네. 우리 인생도 그렇다네. 고난과 시련이 없으면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없다네"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저 아름다운 가을 단풍과 열매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한 해 동안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십자가를 요리조리 피하려고 하지나 않았는지 반성해 보자. 혹시 나에게만 고통과 시련을 주신다고 하느님을 원망하지나 않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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