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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환상 속의 그대(30주 화)
작성자조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0-10-31 조회수2,551 추천수18 반대(0) 신고

어떤 백인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흑인 남자와 뽀뽀 한 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하지만 이 여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배짱이 없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가고 있는데 순진하게 생긴 흑인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흑인남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봐요, 나랑 차 한 잔 하지 않을래요?"

흑인 남자는 순순히 따라 왔고, 여자는 자신의 집으로 흑인 남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이 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이 의자에 묶어 주시겠어요?"

이 남자는 여자가 시키는대로 했고, 여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자, 이제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자 이 흑인 남자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이 흑인 남자는 웃으면서 그 집의 텔레비전과 비디오, 그리고 그 밖의 물건들을 떼어들고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이 여자가 바라는 것은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뽀뽀를 하겠지 라고 착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남자는 기회는 찬스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집의 물건을 모두 가져가지요.

사실 자신의 생각과 이 세상은 똑같이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상 속에 산다'라는 말을 곧잘 하곤 합니다. 즉, 나의 미래는 이러 저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재 지금의 삶은 과거와도 그리고 미래와도 전혀 연관이 없는 경우도 많은 법이지요.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런 환상 속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으로써, 언젠가는 과거 다윗왕과 솔로몬왕 치하에서 누렸던 그 명성을 다시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60~70미터 이상 자라는 레바논의 커다란 삼나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유다인의 세계관에서 보면 질서는 거룩하고, 무질서는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밭에다 심을 수 있는 것들에 관해서도 아주 엄격한 규칙이 존재했었지요. 특히 겨자씨는 급속하게 퍼져서 다른 채소에 폐해를 입히기 때문에 밭에다는 심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를 밭에다 뿌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다음에 나오는 누룩 역시 그렇게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지요. 이 누룩은 부패의 상징으로, 일상생활에서 불결한 것으로 표상되곤 했지요. 이처럼 부정한 것, 불결한 것을 통해서 가장 거룩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니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눈에 선하지 않나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었지요. 그보다는 하느님의 더없이 크신 일들이 거창한 형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즉, 대성전에서, 높다란 건물에서, 화려한 대형 무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 나라는 누구나가 언제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하느님 나라는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은밀하게 드러납니다. 나의 가족 안에서, 나의 친구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우연히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지요.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런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환상,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기쁘게 지금 현재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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