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열심히 그러나 함께(위령의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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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명연 | 작성일2000-11-02 | 조회수2,828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교회는 오랫동안 위령의 날에 우리보다 앞서 가신 부모와 가족, 친지, 그리고 벗들을 위해서 기도 드리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오늘 죽은 이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앞서 우리 곁을 떠난 분들을 생각하는 슬픔이 새롭게 살아날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이제는 잊혀졌던 슬픔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기도 할 것입니다.
이처럼 '위령의 날'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느낌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이 '슬픔'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 있다면, 내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슬픔을 가져다주고, 두려움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죽음을 좋게 말하지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저 사람은 죄를 많이 지어서 벌을 받은 거야."라는 식으로 죄의 결과가 바로 죽음이라고 평가하곤 합니다. 죄를 짓지 않더라도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데도 말이지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어떤 병사가 월남은 우리 나라와는 달리 사시사철 꽃이 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양봉을 하면 상당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서 자신의 생각대로 한국에서 벌을 가져가서 월남에서 양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첫해 그는 엄청난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의 꿀벌은 열심히 일해서 꿀을 모았지요. 그런데 다음해가 되자 벌들은 꿀을 모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꽃들이 만발해 있는데도, 벌들은 꿀을 모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시사철 꽃이 피기 때문에, 꿀벌들은 꽃이 피지 않는 겨울을 나기 위해 굳이 꿀을 모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유한한 생명을 주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죄의 결과로서 '죽음'이라는 슬픔과 두려움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이 세상을 보다 더 열심히 살라는 이유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월남에 간 꿀벌이 사시사철 꿀을 얻을 수 있기에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항상 내일이 다가올 것이고 세월은 끝이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이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놓으신 일조차 말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들 눈앞에 죽음이 있고 이를 대비하라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 계명을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즉, 열심히 일해서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또 보다 편하게 재물을 모으려는 사람들도 참 많지요. 그래서 각종 비리가 생겨나고, 각종 인재가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작년 이맘때, 인천의 어느 호프집에서 50여명의 젊은 청소년들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는 씨랜드에서 유치원 학생들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지요. 그밖에도 몇 해 전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등등 개인의 이기적인 마음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까?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개인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미사 시간 동안, 내 자신은 주님의 나라에 우리 모두 함께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지 반성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이웃들과 친교를 이루면서 더 열심히 생활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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