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의 죽음(위령의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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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11-02 | 조회수2,557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2000, 11, 2 위령의 날 복음 묵상
마태 25,1-13 (열 처녀의 비유)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에 비길 수 있다. 그 가운데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은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한편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아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저기 신랑이 온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 소리에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제각기 등불을 챙기었다.
미련한 처녀들은 그제야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 것을 나누어 주면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다 모자랄 터이니 너희 쓸 것은 차라리 가게에 가서 사다 쓰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겼다.
그 뒤에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 좀 열어 주세요.' 하고 간청하였으나 신랑은 '분명히 들으시오.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며 외면하였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묵상>
가끔씩 함께 했던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바로 앞두고 자리에 누워있는 제 자신을 그려보곤 합니다. 슬프고도 안타까운 시선을 뒤로 하고 이제 곧 저 세상으로 건너가야 하는 제 마음 역시 미어지지만, '난 괜찮아! 후회없이 살았어. 다음에 만나.'라는 멋진 인사말을 남기며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는 제 모습을 그려봅니다.
아직은 저의 죽음이 그렇게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기에 이렇게 낭만적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의 저의 마지막 순간을 이런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합니다.
어느 누구도 저와 함께 죽을 수는 없습니다. 저를 대신해서 죽을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죽음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입니다. 사실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혼자서 갈 수밖에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 때에도 어차피 자신의 죽음은 자신만의 죽음일 뿐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두려운 순간일 것입니다.
외롭고 두려운 죽음의 순간을 피해갈 수 없기에, 기왕이면 기쁜 마음으로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해야겠지요.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곱게 다듬어, 생의 마지막 날을 밝이는 등불의 기름으로 모아야 합니다. 어차피 남들이 줄 수 없는 것, 제 손으로만 준비할 수 있을 뿐이니까요.
지금은 이미 주님의 품으로 떠나셨겠지만,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시던 한 분이 떠오릅니다. 말기 암 환자이셨던 50대 중반의 그 형제님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시며 자신의 생을 차곡차곡 정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남겨놓고 떠나셔야 했지만, 오히려 그들과 병자 방문을 위해 자신을 찾아 온 저와 제 동료를 위로하셨습니다. 그 형제님에게 있어서 죽음은 마치 언젠가는 꼭 만나야만 할 친구였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화창한 늦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죽음을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 춥고 어둡고 음산한 죽음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그리고 이를 건너 새로운 시작으로서 따뜻하고 밝은 모습으로 죽음이 느껴집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며 세상을 떠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오늘 이 시간만큼은 언젠가 맞이할 제 자신의 죽음을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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