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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와 남을 똑같이(연중 30주 금)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11-03 조회수2,805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0, 11, 3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루가 14,1-6 (수종병자를 고치신 예수)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 보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예수 앞에는 수종 병자 한 사람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일이 법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병자의 손을 붙잡으시고 고쳐서 돌려 보내신 다음 그들에게 다시 물으셨다.

 

"너희는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다면 안식일이라고 당장 구해 내지 않고 내버려 두겠느냐?"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못 하였다.

 

 

 

<묵상>

 

생명이 위독한 경우라는 전제 조건 하에 안식일에도 병자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떠한 경우가 생명이 위독한 경우일까요? 어디까지가 생명이 위독한 경우이고 어디까지가 그렇지 않은 경우일까요? 누가 그것을 판단할까요?

 

사실 생명이 위독하다는 기준 자체가 애매모호한 것입니다. 똑같은 경우라도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식이 아프면 열 일 다 제쳐놓고 달려가지만, 남의 자식이 그보다 더 심하게 아프더라도 자신의 일을 핑계삼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이 위독한 경우라는 애매한 기준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고쳐 줄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 라는 기준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안식일 규정에 타당한 기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애매한 전제 조건 자체를 없애십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일이 법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나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달리하는 이중적인 모습에 대한 질책이면서 동시에 이 이중적인 기준을 하나로 모아 안식일 법을 사람을 살리는 법으로 다시 세우시는 선언입니다. 그러기에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가 소중한 하느님의 사람임을 깨닫고 다른 이를 보듬어 안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른 이들이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는 나를 이해주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정작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몰인정하게 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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