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은행 알을 씻으며(연중31주일 강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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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인찬 | 작성일2000-11-05 | 조회수3,373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은행 알을 씻으며
지난주에 할아버지 두 분과 땀을 흘리며 주워 모았던 은행은 성당 뒤꼍에서 일주일동안 적당히 썩도록 보관해 두었다. 은행을 먹기 위해서는 은행을 따는 일보다 딱딱한 껍질을 싸고 있는 물렁물렁한 것들을 베껴내는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배설하는 그 무엇의 냄새와 거의 흡사해서 참 고약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할아버지들의 노하우로 오늘 일은 쉽게 마칠 수 있었다.
성모회원들과 서울에서 은행 알을 씻기 위해 일부러 방문한 구의동 성당 아가씨 신자와 78세 되신 할머니등 모두 열 명이 넘게 일을 해서 한시간 반만에 끝마칠 수 있었다. 적당하게 썩은 은행을 채바구니에 넣고 고무장갑을 끼고 마음껏 주무르고 나서 흐르는 물에서 바구니를 기울이면 껍질만 떠내려가고 은행 알은 무게 때문에 바구니 속에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 은행 알을 한 데 모으자 너무 가지런한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러자 한 할머니가 "서울 오라버니의 모습 같다"라고 말씀하신다. 서울 사는 오라버니는 예쁘고 시골에 사는 오라버니는 꼬질 꼬질 하기 때문일 게다. 아무튼 이렇게 잘 씻은 은행을 성당의 잔디밭에 신문지를 깔고 말리고 나니 가슴이 뿌듯하다. 한낮이면 금방 마를텐데 석양빛이어서 잘 마르지 않는다. 내일 다시 말리기로 하고 바구니에 담아서 사무실에 잘 보관해 두었다. 레지오 단장님께 다음 목요일 레지오 회합 때 구의동 성당 아가씨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예쁜 봉투에 담아달라고 부탁하니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다음 주일에 미사에 오는 분들에게 비록 적은 양이지만 선물로 한 봉지씩 드릴 생각을 하니 한 주일이 기다려진다.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늘 교무금과 헌금을 아낌없이 봉헌하시는 신자들의 정성에 나는 늘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신자들은 무엇을 바라고 성당에 오는 것은 아니지만, 주일미사 강론이라도 감동 있게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니 늘 죄송한 마음이다. 성체라도 안흥 찐빵 처럼 크게 만들어서 주면 배고플 때 요기라도 되련만 작은 밀떡으로 영성체 해드리는 것이 왠지 섭섭하다. 그런데 다음주일에는 은행이라도 조금씩 드릴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
내가 너무 인간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오늘 은행 알을 씻으며 이런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성당에 찾아오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하느님께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서일 것이다. 요즘같이 복잡하고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서 온간 상처와 좌절을 맛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내 자신은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에게 강론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죄의식을 더 고취시키고 항상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살지 않았고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고 책망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오늘 복음 말씀이 사랑의 이중계명이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영세받은 신자들은 다 아는 계명이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면서 살아간다. 사실 이 계명의 중요성을 소리 높여 외치는 나 역시 그렇게 살지 못한다. 우리들은 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따를 수 없다. 그래서 특별하게 큰 죄를 짓지 않았어도 늘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그래서 주일미사에 가서 좀 그 동안의 부족한 삶을 반성하며 용서를 받고 다시 용기를 내어 살아볼 양으로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참으로 대단한 마음이 아니면 사실 주일미사에 참석하기 어렵다.
이웃집에 사는 부부가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주일이면 등산을 하는 것을 보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친형제들이 모여서 함께 오손도손 식사를 하자고 해도 주일 미사가 더 중요하다고 모든 것을 제쳐놓고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런 신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우리 성직자들은 자신도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그저 죄인들로 몰아 부친다. 일주일 동안 자신의 넋두리를 할 대상을 못 찾다가 옳거니 하면서 온갖 사회불만을 토로한다. 세상살이가 힘들어 성당에 가서 하느님께 위로를 구하러 왔던 신자들은 이내 지난 주일에 가졌던 실망을 회상하고는 눈을 감아버린다. 주일 미사에 빠지자니 대죄가 된다니 마음 내키지 않는 고백성사를 또 보아야겠고, 혹시나 하고 미사에 참석해보니 마음에 위로와 평화보다는 갈등만 일어나니 신앙생활에 전반적인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분명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보다는 죄의 심판자도 정의의 사도로 살아온 것 같다. 오늘 은행 알을 씻으며 이런 과거의 잘못을 모두 시냇물에 흘려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련다. 바구니에 가득 담긴 은행 알이 너무 탐스럽게 보이는 주말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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