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탈출]첫 번째 좌절과 노동의 왜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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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11-12 | 조회수2,557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11월 12일(연중 32주일) 서울대교구 catholic 청년주보에 게재한 글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탈출기(출애굽기) 5,1-6,1을 먼저 읽고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좌절과 노동의 왜곡(출애 5,1-6,1)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나아가 하느님의 명을 전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모르는 파라오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파라오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는 청을 일하기 싫어서 뱉어내는 허튼 소리쯤으로 치부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혹사시킵니다.
여기에서 노동이 심각하게 왜곡됩니다. 사람만이 노동을 합니다. 노동은 사람이 하느님의 소명에 따라 창조주 하느님의 활동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노동은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오히려 사람을 하느님께 다가가지 못하게 만드는 굴레가 됩니다.
왜곡된 노동에 짓눌린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의 화살을 노동을 왜곡시킨 파라오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을 해방시키시려는 하느님께 돌립니다. 하느님의 대리자인 모세와 아론을 저주함으로써 말입니다. 모세와 아론 역시 하느님께 한탄을 늘어놓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원성에 함께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결코 이들을 내치지 않으시고 당신의 권능을 드러낼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오늘의 현실 안에서 '노동을 통한 하느님 창조 사업의 동참', '노동의 신성함', '노동의 즐거움', '노동을 통한 자아 실현'이라는 말들이 왠지 낯설게 다가옵니다. 오히려 이런 말들보다 '심각한 노동 강도', '일 중독', '강요된 노동'이라는 말들이 익숙하게 다가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과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이러한 상황 안에서 청년 예수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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