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험생을 위한 미사(연중 32주 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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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명연 | 작성일2000-11-14 | 조회수3,479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우리가 살다보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빨리 시간이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또한 내가 빨리 도달하고 싶은 어떤 일들이 있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오늘 이 미사에 참석한 수험생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네요. 내일 있을 시험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 그리고 이 수능을 더 이상 체험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득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가 하나 생각납니다.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자기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기의 연인이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초조했지요. 바로 그 때 어떤 회색의 난쟁이 노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 젊은이에게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하고 묻는 것이었어요. 이 젊은이는 자기의 연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이 노인이 단추를 하나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단추를 옷에 붙여서 오른쪽으로 돌리면, 당신은 시간을 먼저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이 젊은이는 너무나도 신기했고 꿈 같았지만, 혹시나 하고서 자신의 옷에 단추를 붙이고는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사랑하는 연인이여, 빨리 와다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고대하던 연인이 웃는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너무나도 신기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단추를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사랑하는 연인과 빨리 결혼하고 싶다."라고 말했더니, 말하기가 무섭게 성대한 결혼식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집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 집이 세워졌고, "아이를 원한다."라고 하면 몇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또 "포도밭이 있었으면..."하면 포도밭이 생겨났습니다. 이 젊은이는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희망의 단추를 돌렸지요.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는 이미 백발 노인이 되어서 자기 무덤 앞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요.
성급하게 미래를 먼저 가진 그 동화 속의 젊은이는 처음에는 행운인 줄 알았지만, 죽음까지도 먼저 얻게 되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미래에 빨리 다가가고 싶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원 같은 곳에 가서 점을 보기도 합니다. 아마 오늘 미사에 참석한 수험생들도 이렇게 미래에 빨리 다가가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의 단추를 가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그 동화의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희망의 단추가 없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오히려 더 큰 행운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 주님께 모두 내어 맡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즉,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종과 겸손의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 현재에 보다 더 충실할 수 있고, 또한 늘 편한 마음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수능을 치룰 우리 수험생들의 마음이 지금 무척이나 초조하고 불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때는 수능이 아니라 학력고사라고 했는데, 저 또한 그 당시에 무척이나 초조하고 불안했었지요. 하지만 내가 아무리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바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 주님께 맡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침착하게 시험 잘 치루기를 바라면서, 여러분들이 그동안 노력한 것들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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