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연중 32주 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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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11-16 | 조회수2,263 | 추천수22 | 반대(0) 신고 |
2000, 11, 16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루가 17,20-25(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그 때에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날을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아라. 저기 있다.' 혹은 '여기 있다.' 하더라도 찾아 나서지 마라. 마치 번개가 번쩍하여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환하게 하는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그 날에 그렇게 올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은 먼저 많은 고통을 겪고 이 세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
<묵상>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느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볼 수는 있습니다. 멀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맡고 있는 예비 신자 교리반에는 항상 동생과 함께 나오는 자매님이 한분 계십니다. 30대 중반이지만 아직 미혼인 이 자매님께서 데리고 오는 동생은 이제 30줄에 들어선 뇌성마비 장애우입니다. 집밖에 나올 때는 항상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하는 몸이지요. 거의 매 시간 이 동생을 데리고 교리반에 나오십니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한걸음도 집밖으로 나올 수 없는 동생의 갑갑하기 쉬운 일상 생활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며칠 전 이 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제작된 텔레비젼 프로그램 녹화 비디오 테이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별로 길지는 않았지만,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을 보았는지 모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불편한 몸을 가지고 힘겹게 생활해야 했던 자매님은 이제 화가로 변신했습니다.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기에 발가락에 연필이나 붓을 끼워 손으로도 제대로 그릴 수 없는 그림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캔버스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다 시큰해졌습니다. 이 자매님에게 기자가 물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가 가장 미웠느냐?'고 말입니다. 자매님은 '저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그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지금 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을테니까요.'(정확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비디오를 보면서 그 속에 담겨진 또 하나의 주인공을 보았습니다. 바로 지금 저에게 예비 신자 교리를 받고 계신 자매님입니다. 주인공의 언니 말입니다. 동생이 그림을 배우러 다니는 멀리 송파구까지 일주일에 세번씩 동생을 데리고 가는 언니, 예비 신자 교리에 나올 때 동생을 함께 데리고 나오는 언니, 이 언니가 있었기에 동생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세례를 받고 신자 된 동생은 이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서나마 예비 신자 교리를 받는 언니를 도와주려고 이런 저런 말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맡고 있는 교리반에서 매주 일어나는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헌신적으로 동생을 보살피는 언니와 새로 거듭 난 동생, 그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 나라는 저를 초대합니다. 함께 하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참으로 맞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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