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너를 허물고 나를 세우리라(연중 34주 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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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11-28 | 조회수2,182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2000, 11, 28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루가 21,5-11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 재난의 시작)
사람들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
그들이 "선생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즈음해서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 하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
또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그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끝날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곳곳에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또 기근과 전염병도 휩쓸 것이며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묵상>
살다보면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속해있는 자그마한 모임이나 공동체에 대해서,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에 대해서 내심 뿌듯하게 생각하며 자족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도가 지나쳐 이런 것들에 집착하거나 자만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외적으로 드러난 것에만 눈길을 보낼 때 이런 어리석은 짓을 너무나 당당하게 행하게 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자신, 자신이 속해있는 자그마한 모임이나 공동체(교회안에 있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 이 모두를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겉으로 그럴듯 하게 보인다 할 지라도 그 안에 주님의 뜻이 담겨 있지 않다면, 주님의 뜻으로 정향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이내 허물어지고 말 모래성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와 자신의 일을 주님의 뜻으로 채우기 보다는, 인간적인 욕심과 명예, 알량한 자존심과 하찮은 지식으로 채우려 합니다. 그것도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뜻을 이룬다는 미명하에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무척 당당합니다. 이들의 당당함 앞에 오히려 측은함을 느끼게 됩니다. 도대체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당당하게 아니 뻔뻔스럽게 자신의 뜻만을 고집하는 이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이내 인간적 한계안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조금만 주님의 뜻을 헤아린다면, 조금만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다면 자신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참된 신앙인으로 기쁨과 희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텐데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잘못된 것이라고 하더라도(사실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잘못인지 안다면 그것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 안에서 쌓여 온 여러가지 것들을 떨어버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관점들도 오랫동안 자신 안에 묵혀 있으면 옳은 것처럼 느껴지고, 주님의 뜻과 무관하거나 심지어 상반되는 인간적인 뜻도 이기심에 눈이 먼 자신에 의해, 자신이 속한 단체의 잘못된 전통에 의해 주님의 뜻으로 둔갑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한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것, 바로 주님과 맞대고 앉아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것, 교회 공동체 전체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신앙인은 아무도 없겠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실천을 하고 있는지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사제로서 살아가면서 교회 공동체안에서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라고 해서 여기서 특별히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교회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특히 교회안에 있는 여러 단체간의 미묘한 갈등이나 입장 차이, 이로 인한 개인 신상에 관련된 문제에 이르기까지) 안타까운 경우도 많고, 심지어 주체하기 어려운 격정과 분노를 일으키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솔직히 사제로서의 한계를 체험하면서 하느님께 한탄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만히 계시는 주님이 너무나도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멋대로 교회 활동을 하는 이들이 교회 공동체 전체의 입장이나 다른 신앙인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 함부로 주장하는 경우에 참으로 암담한 생각이 듭니다. 이들의 그릇된 생각이나 행동을 바로 잡아주되, 이들이 지니고 있던 것들이 무너질 때 오는 상처를 최소화시킴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주님의 사제로서의 책임이기에 사제 생활이 참으로 어려운가 봅니다.
요즈음 이런 저런 일련의 일 때문에 고민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얻습니다.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
자신의 생각만으로, 자신이 속한 단체의 전통만으로,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만으로 세워놓은 아성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을, 다른 단체를, 교회 공동체 전체를, 모두 함께 일구어가는 주님의 일을, 하느님의 뜻을 보지 못하는 미숙한 이들이 참 신앙을 되찾게 되리라는 말씀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일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아픔을 겪어야만 하겠지만, 제 안에서 먼저 이 일을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보시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이들 안에서 이 일을 꼭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를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님의 자그만한 도구로서 사목 현장으로 기쁘게 그리고 당당하게 달려가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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