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을 증언할 때는?(연중 34주 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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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11-29 | 조회수2,380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2000, 11, 29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루가 21,12-19 (재난의 시작)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 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이다.
이 말을 명심하여라. 그 때 어떻게 항변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잡아 넘겨서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묵상>
신앙인들끼리 모여 있으면 믿음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말을 하게 됩니다. 나름대로의 신앙 체험을 나누기도 하고, 이 체험에 바탕을 하여 구체적 삶 안에서 어떻게 신앙을 증거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기도 합니다. 무척 소중한 나눔입니다. 이러한 나눔에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은 쉽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체험 하나라도 될 수 있으면 부풀려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강하게 고백하면 고백할수록 다른 신앙인들에게 인정을 받고 모범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사실 어렵습니다. 애써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과 배치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상황의 탓으로 돌리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 많은 신앙인들이 현실적으로 이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가 아니라 신앙인들끼리 모여 있는데서도 이러한 적당한 타협, 믿음의 포기, 비복음적인 언행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신앙인들 개개인의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고 함께 모여 있는 여러 단체가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면,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 교회의 존재 이유, 복음적인 활동, 개인적 차원에서의 믿음의 실천등이 녹아들어갑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사이가 갈라지고 단체 이기심이 발동하게 되면, 이내 이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신앙인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로서 믿는이들의 단체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 난무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화해와 신뢰는 사라지고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의 입장의 관철을 위해 상대방에 대한 온갖 비난을 늘어놓고 알량한 인간적인 지식과 논리를 앞세우곤 합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 때가 진정으로 복음으로 돌아가 복음의 빛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복음에 따라 화해와 일치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것들이 평온한 가운데 이루어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그리고 분홍빛에 물든 그런 공허한 신앙 고백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증언할 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을 이야기 한다는 것,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 교회의 존재 목적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치는 것,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자고 호소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하기 쉽습니다.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신앙인이 오히려 신앙의 포기를, 복음의 포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고, 그러기에 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적인 방식이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만드신 교회가 이제 알맹이가 사라진 채 껍데기만 남습니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세상과 구별됩니다. 경쟁과 세력 다툼, 그 안에서의 적당한 타협으로 유지되는 세상과는 달리 완전한 폭력 단념과 무조건적인 화해, 서슴없는 신뢰로 유지되는 대조 사회가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분열의 상황에서, 경쟁의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화해하자고, 그동안의 불신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서로를 신뢰하자고,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면 망상에 젖은 이상주의자 또는 인간적인 현실을 도외시하는 광신자 쯤을 매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위로부터의 이러한 비난을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복음의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비록 당장은 인간적인 논리에 밀려 설자리가 없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이렇게 살아가는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나라를 굳건하게 세우실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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