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알몸으로 주님 맞이하기(대림 1주 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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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12-05 | 조회수2,226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2000, 12, 5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루가 10,21-24 (그렇습니다. 아버지! 제자들의 행복)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들이 누구인지는 아버지만이 아시고 또 아버지가 누구신지는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사실 많은 예언자들과 제왕들도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
<묵상>
나에게는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가 있습니다. '경험으로서의 나', '지식으로서의 나', '지위로서의 나', '재물로서의 나', '...로서의 나'가 그것들 입니다.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는 내가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누군가를 간절히 만나려고 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가 아니라 내가 다른 이들을 만날 때, 그 만남은 순수할 수 있습니다. 만나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알 수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는 나의 삶의 지평을 넓혀주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담았던 맑고 순수한 마음의 눈을 가리고 왜곡된 시선으로 다른 것들을 보도록 이끌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깊은 성찰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실천에 꼭 필요합니다. 조금만 게으르면 어느 새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가 나의 자리에 비집고 들어와 마치 자신이 진짜 '나'인 것처럼 행사하기 쉽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또 다른 자신'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것들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물들, 사건들 모두가 직접 자신과 마주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말이죠. 그러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는 늘어갑니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것들을 보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 반대입니다. 점점 더 코끼리를 만지는 소경 꼴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알게 되고, 쉽게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혹시 유혹에 넘어갔다 하더라도, 이내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대림 시기는 나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나에게 오시지만, 내가 꼭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주님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꼭 주님을 제대로 알아 보는 계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내'가 이 만남을 방해할 수 있고, 나에게 오시는 주님을 있는 그대로가 왜곡되고 편협한 시선으로 보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대림 시기는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를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벗겨내고 마지막 알몸뚱이인 '내'가 남을 때, 비로소 나는 나에게 오시는 주님을 온전히 맞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번 대림 시기만큼은 주님을 정성껏 맞이하겠다는 이유로 오히려 이것 저것 또 다른 나로 나를 치장하여 결국에는 주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좀 더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 조금은 부끄럽겠지만 내가 입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옷들 모두 벗어버리고 주님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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