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 보기(12월 2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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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명연 | 작성일2000-12-20 | 조회수2,386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지금은 감기가 다 낳았지만, 지난 주에 감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판공성사 때문에 더 힘들었지요. 아마 목요일 저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날 너무나 피곤해서 일찍 잠을 자려고 씻고 침대에 누웠지요. 그리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자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것이었어요. 저는 '이 새벽에 왠 전화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 머리맡에 있는 시계를 보았지요. 그런데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늦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사실 제가 미사 시간에 늦을 것 같으면 수녀님께서 제 방으로 전화를 해주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미사 늦었으니 수녀님께서 전화를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서는 곧바로 전화 수화기를 들고서 "네, 나갈께요."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어딜 나가?"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이 전화는 수녀님이 아니라, 제 동창 신부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시간은 6시가 아니라 밤 12시 30분이었지요. 저는 잠결에 분침과 시침을 거꾸로 보고서 괜히 서둘렀던 것이었지요.
아무리 잠결이라고는 하지만, 시침과 분침을 거꾸로 보아서 서둘렀던 내 모습에 너무나도 어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조금만 더 주의깊게 시계를 보았더라도 이렇게 허둥대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실수도 하지 않았을텐데... 오늘 복음에서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합니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보다도 나이가 많습니다. 또한 둘은 친척으로써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향해 최대 존경의 표시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성모님 뱃 속에 있는 아기 예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또한 아기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성모님께 대한 편견과 '내가 마리아보다 더 나이가 많은 언니니까 더 대접을 받아야돼'라는 욕심을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이렇게 겸손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성모님에 대해서 주의깊게 바라볼 수 있었고, 성모님 안에 계신 하느님을 제대로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앞서 주의깊게 보지 않아서 실수를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의깊게 바라보지 않고, 어떤 편견과 욕심 속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예를 저는 고백성사 때 자주 느끼곤 합니다. 사람들이 고백하는 죄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남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좀 심하신 분은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지요. 그때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지요. 따라서 우리들 각자 각자에게는 하느님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하느님을 미워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제는 나를 드러내려는 욕심을 버리고 겸손함을 가지고서 제대로 보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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