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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수대원에게 보내는 편지(사도 요한 축일)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12-27 조회수1,962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0, 12, 27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 묵상

 

 

요한 20,2-8 (빈 무덤)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 주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두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묵상>

 

일산 농성장 '사수대' 안상호 대리님께 드리는 편지

 

오늘 조간 신문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착찹한 심정으로 말이지요. 차가운 농성장을 지키고 있을 당신이 안쓰럽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난생 처음 잡은 쇠파이프가 어색한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경찰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를 끌어내면 그냥 끌려가는 거죠. 사수대는 가장 먼저 끌려갈 겁니다. 그러나 파업은 계속될 겁니다." 경찰 진입을 앞두고 맨 선두에서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사수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살벌하게 보이는 쇠파이프로 무장한 사수대이지만 당신의 마음은 세상 어느 사람보다도 순수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한국금융을 지킨다는 심정으로 차가운 농성장을 지키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당신의 뜻에 함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리고 당신과 함께 하는 이들이 은행 업무의 마비에 따른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로 갈갈이 찢겨지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미어지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하마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삼키면서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당신이 천주교 신자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당신을 만나면서 예수님을 사랑했던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따랐던 12사도 중의 한 사람인 요한 사도의 축일이랍니다. 예수님께로부터 특별히 사랑받았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상심했던 요한은 예수님을 묻었던 무덤이 비어있다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말을 듣고 한걸음에 무덤으로 달려갔었지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해서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요한이 달음질쳐 갈 수 있었던 힘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무덤에 도착해서는 멈춰 섰지요.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말이죠(참고로 이스라엘의 무덤은 우리나라의 것과는 다르답니다. 동굴처럼 되어 있죠). 그래서 함께 온 시몬 베드로가 먼저 무덤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은 베드로를 뒤따라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요한은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자리를 베드로에게 양보한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 양보이지 요한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빈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러한 요한 사도가 너무나도 좋습니다. 주님을 향한 요한의 순수한 열정을 저 역시 가지고 싶습니다. 요한이 지녔던 주님께 대한 희망과 사랑에 저 역시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안상호 대리님!

 

 

오늘, 당신에게서 요한 사도를 봅니다. 한걸음에 농성장으로 달려간 당신의 열정, 신자유주의에 온 몸으로 맞서는 무모함에 담긴 포기하지 않는 희망, 가장 먼저 경찰에 끌려가겠다는 그 순수한 마음에서 요한 사도를 떠올리게 됩니다.

 

힘내십시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도 요한을 떠올리시면서 희망을 접지 마십시오. 그 순수한 뜻을 계속 간직하십시오. 지금 당장의 힘겨움에 무릎을 꿇지 마십시오. 오늘, 내일 아니면 며칠 후가 될 지 모르겠지만, 당당하게 잡혀가십시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이 편지를 당신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변치 않는 모습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는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장황한 편지를 띄웁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마음으로 함께 하는 사제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벗에게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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