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회개하는 신앙인(바오로 개종 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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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1-25 | 조회수2,652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2001, 1, 25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 강론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 개종 축일로서 사도의 개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서의 말씀을 듣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독서 말씀 전문을 함께 게재합니다.>
사도행전 22,3-16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는 바오로)
그 무렵 바오로가 백성에게 말했다. "나는 유다인입니다. 나기는 길리기아의 다르소에서 났지만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믈리엘 선생 아래서 우리의 조상이 전해 준 율법에 대해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느님을 공경하던 열성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의 열성에 결코 못지않았습니다. 나는 교인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잡아 감옥에 처놓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이 예수의 교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대사제와 온 의회가 증명해 줄 것입니다. 나는 그 사람들로부터 다마스쿠스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있는 신도들까지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벌을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오정 때쯤에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나타나 내 주위에 두루 비쳤습니다. 내가 땅에 거꾸러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는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예수다.' 하는 대답이 들려 왔습니다.
그 때 나와 함게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신 분의 음성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물었더니 주께서는 '일어나서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거기에 가면 네가 해야 할 일을 모두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못 보게 되어 같이 가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거기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를 찾아와 곁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이 띄어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나니아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보게 하시고 또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일을 그분을 위해서 모든 사람 앞에 증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어서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리시오.'"
마르코 16,15-18 (제자들의 사명)
그 때에 예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따르게 될 것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도 쫓아 내고 여러 가지 기이한 언어로 말도 하고 뱀을 쥐거나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며 또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강론>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은 주님께로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가도록 이끄는 회개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하느님에게서 떨어져나온 우리의 반역죄를 고백하고 다시금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하느님께서 인류 공동체에 내려주신 평화와 정의를 외면하고 이기심에 젖어 분쟁과 억압을 되풀이했던 우리의 삶을 주님의 평화와 정의로 다시 채우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의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처음부터 이미 이 땅에 도래한 하느님 나라에 살기 위해 회개하라고 외치셨고, 예수님을 준비하던 세례자 요한 역시 회개하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알게 모르게 수많은 죄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의 죄로 인해 하느님과 이웃에게 커다란 상처와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단 한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 하느님 나라에서 살게 될 완전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삶의 여정 안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숨 쉬기와 같은 것입니다.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 죽은 것을 의미하듯이, 회개가 빠진 신앙은 곧 죽은 신앙입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끊임없이 회개를 호소하여 왔습니다.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어 비참한 처지로 내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 안에서 나름대로의 크고 작은 회개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개의 체험이 있는 사람은, 회개에 이르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회개한 후에 주님의 품에서 누리는 참 평화와 기쁨은 세상에서 주는 어떠한 감미로운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압니다.
우리는 오늘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결정적인 회개를 묵상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아니 이러한 박해를 통해 예수님 자신을 박해했던 사울의 회개가 그것입니다. 박해자 사울은 회개를 통해 사도 바오록가 되어 온 세상에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였고, 마침내 박해자의 손에 의해 죽음으로써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박해자에서 사도로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담담한 증언을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증언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삶의 모습을 180도 바꾼 사도 바오로의 믿음과 결단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박해하던 사람들의 편이 되어 이제는 박해받는 자가 된 사도 바오로의 회심은,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에 젖어 좀처럼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정녕 위대한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박해자를 복음의 선포자로 선택하신 하느님의 사랑의 섭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사도 바오로의 회개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회개는 개인의 성찰이나 결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에 앞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기울이는 사람만이 참된 회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히 회개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각자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든 작든 회개의 체험은 신앙의 소중한 밑거름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의 무감각 때문에 미처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가곤 합니다. 부르심과 회개의 체험에 대하여 좀더 예민한 감각을 가지는 것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바오로의 회개를 묵상하는 오늘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의 체험을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어떠한 말씀을 하셨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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