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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무엇을 드리는가?(주님 봉헌 축일)
작성자조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1-02-02 조회수2,496 추천수19 반대(0) 신고

인도 어느 부락에서 선교활동 중이던, 한 선교사가 수 차례 전도하려했던 여인을 어느날 아침 만났습니다. 그녀는 두 아들을 그녀의 손에 잡고 어디론가 급히 향하고 있었지요. 그 중 한 아이는 아주 잘 생기고 똑똑해 보였으며, 매우 건강해 보였습니다. 반면, 좀더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아이는 몸을 떨며 침을 흘리고 있었지요. 이 정도면 대충 아시겠지요. 그 아이는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는 여인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지요.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아주 의외였습니다.

 

"저는 저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우리 부족의 신에게 이 아이들 중 한 아이를 제물로 드리려 합니다. 그래서 강으로 가고 있지요."  

 

이 놀라운 대답에 놀란 선교사였지만 그들의 종교 관습을 알기에 무슨 말을 해야 이 여인의 행동을 만류시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요. 이 상황의 최선의 할 수 있는 것이란 하느님을 그녀에게 증거하고, 예수님의 은총을 설명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비장한 결심을 꺽을 수 없었지요.

 

참으로 난처하고도 답답한 몇 일을 보낸 후, 여인을 찾아 가 조심스레 말을 건냈지만, 아이에 대해서 차마 물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방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몸을 흔들며 나오는 큰 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교사는 참 다행으로 여기며 여인에게 작은 애는 어디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아이 중에 한 아이를 제물로 바친다고 했으나, 정상이 아닌 아이가 여기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선교사의 기대와는 반대로 이 여인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기억 못하세요? 지난 번에 만났을 때, 제가 우리의 신들에게 아이 중 하나를 제물로 드리러 강으로 간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선교사는 깜짝 놀랐지요. 정말로 자기 아이를 제물로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왜 큰 아이가 남아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지요.

 

"당신의 아이 중 하나를 신들에게 드려야 했다면 아이에 대한 사랑은 어느 아이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큰 아이를 제물로 드리지 않고 왜 작은 아이를 제물로 드렸습니까?"

 

선교사의 질문에는 비정상아와 정상아의 우열 선택이라는 논리가 깃들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여인은 놀라면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당신은 당신의 신에게 그렇게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바칩니다."

 

선교사는 너무나 큰 충격과 자신의 선교의 허구를 발견했답니다. 저 무지몽매한 종교의 신들을 대하는 사람들도 최상의 것으로 드리고자 자기 자식, 심지어 극단의 선택의 기로의 상황에서도 최상의 것으로 드리는 신앙의 모습을 보이는데, 사랑과 인격으로 만나 주시는 유일하신 하느님을 전파하는 자신의 사고 속에 자리잡고 있는 논리는 하느님 앞에 저 여인과 같은 신앙의 행동을 보일 수 없으리라 여겨졌기 때문이었지요.

 

주님 봉헌 축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고 있는 것은 혹시 찌그러지고, 병들고, 내게 이차적인 것들은 아닌지요.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하느님이 주셔서 노령에 얻은 귀한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 명하실 때, 납득이 갔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쫓아 이사악을 제물로 드리지요.

 

예수님께서도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지금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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