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인가(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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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3-03 | 조회수2,350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01, 3, 3,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복음 묵상
루가 5,27-32 (레위를 부르심)
그 때에 예수께서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다.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
레위는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예수를 모셨는데 그 자리에는 많은 세리들과 그 밖에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 있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입니까?" 하고 트집을 잡았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묵상>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죄인들을 기피합니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별종으로 바라보며 언제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급적이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만나려하지 않을뿐더러 혹시 만남의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가급적이면 빨리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죄인들에 대한 불신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관심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죄인들에 대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불신과 불만은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셨던 예수님께 그대로 적용됩니다. 적어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예수님을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오히려 죄인들과 어울려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죄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들의 죄가 아니라 이들의 존재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믿음과 시선이 참된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이 대화를 통해 서로 조금씩 다가가 품에 안게 될 것입니다.
죄인들은 그들이 범한 죄 때문에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뭇사람들의 불신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 때문에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누가 감히 죄인과 의인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각자의 기준으로 의인과 죄인을 갈라 세우고, 자신은 의인이기에 죄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그들을 배척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하듯이 다른 이들은 나에게 똑같이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는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은 의인이고 다른 이들은 죄인이라고 속 편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은 처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멋지게 받아친 예수님의 말씀이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을 후비는 날카로운 비수로 다가오는 것을 보니, 저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보다는 많은 시간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행동했었나 봅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의 따뜻한 시선과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는 이들이 누군지를 생각하고 생활 안에서 그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서는 사순 시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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