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살기를 원하십니까? (3/10)
작성자노우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1-03-09 조회수2,527 추천수19 반대(0) 신고

학교를 복학하고 싶어하는 여학생들 43명과 함께

4박 5일의 수련회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밤이 바로 마지막 밤이고

내일이면 아이들은 이 곳을 떠나서

자신들의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간다.

잘 해낼 지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오늘 밤에 우리는 "죽음 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조명이 으슥한 방에서

소복을 입은 수사님과 수년님의 인도하에

관속에 들어가보기도 하고

유언장도 썼다.

 

진지함 반, 두려움 반의 시간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떨리는 가슴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프로그램 중간에 아이들이 써놓은 유언장을

공개적으로 읽는 시간을 가졌다.

몇 몇 아이들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몇장의 유언장을 읽으면서

"아 이 아이들의 이랬구나" "이런 면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것, 사고만 치고, 말도 안듣고,

대들고 했던 점을 미안해 했다.

 

자신들의 죽음에 직면해서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자신들의 부모님들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의 미안한 맘이 현실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나약한 의지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결국 자신들의 미안한 맘, 그리고 잘해 볼려는 맘을

받아주지 않는 자신들의 주변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결국 아이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라며

체념한 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유언장에 쓰여 있듯이

아이들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 아이들의 주변 사람들 역시

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맘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색안경을 끼고 그들은 단죄하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 신명기의 말씀은

우리에게 맘을 다해서 하느님의 계명과 법규를 지키라고 가르친다.

 

"사랑하라!" 라고 하신 그분의 계명을 지키기에 앞서서

자신의 삶속에서 미안했던 이들에게 참된 용서를 청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오늘 아이들에게 프로그램을 마감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살기를 원하세요?  그럼 죽으면 됩니다.

죽음은 늘 나와 함께 있는 친구입니다.

이상스럽게도 인간은 죽으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의미가 담긴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의 이야기에 집중했던

그 아이의 눈 빛을 지금 이 순간 떠올려 본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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