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낮춤의 신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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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3-13 | 조회수2,296 | 추천수25 | 반대(0) 신고 |
어쩌다보니 젊어서부터 여러가지 중책을 많이 맡아오고 있다. 이것이 형제들을 위한 봉사니 부족함 투성이지만 "예"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대전에서 10년을 살다 서울에 올라오니 아쉬움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공동체 책임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은 점이었다. 이제 홀가분하게 직책에서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소시민적 보통 형제로서의 삶을 누리게 되니 참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헌데 내가 너무 행복한 꼴(?)을 못봐 주시는지 하느님께서는 그 복됨을 만끽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고 이번엔 공동체가 아니라 시설(프란치스꼬 교육회관) 책임을 맡기시는게 아닌가? 좋아하다 말았다!
공동체 책임은 그래도 나의 부족함을 잘 이해해주는 형제들에 대한 봉사이니 어렵지만 그 짐을 나누어질 수 있다. 헌데 시설 책임은 주로 직원들과 함께 해야하는 대중적 봉사이니 나의 부족함으로 인한 피해(?)는 것잡을 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기에 훨씬 더 조심스런 봉사가 아닐 수 없기에 어떻하면 그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잔대가리(?)를 굴리기도 했지만 그분이 맡기시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동안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직원들 안에 일치와 화합이 부족하고 직원들 모두가 자신들의 봉사에 보람을 못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님께서는 내가 진정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계시(?)해 주셨다. <설겆이를 해라!> 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직원들의 우두머리로서 다른 사람 앞에 장으로서 대우받는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가장 낮은 일은 해라. 가장 직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라. 바로 그것이었다. 피정객들이 피정하고 가면 내가 이 곳의 책임자임을 가능하면 모르게 하자. 그냥 이곳의 평범한 한 직원이라고 생각토록 하자. 때로 인간적인 약함에 설겆이를 하다가 피정자들이 나를 알아 주지 않고 그냥 청소하는 아저씨인 양 대해줄 때 슬그머니 언짢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참으로 설겆이 때가 제일 행복하다. 회관장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이다. 나의 낮은 봉사는 직원들에게 화홥과 일치, 보람있는 봉사에 대한 무언의 가르침으로 작용한다. 직원들이 나를 따라 기쁘게 그동안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설겆이를 기쁘게 한다. 내가 하니 사무장님이 하시고 과장님이 하시고... 오히려 소위 윗사람들이 기쁘게 솔선수범하는 분위기가 되니 직원들 모두에게 새로운 가족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오늘도 100명 이상의 피정객들이 있다.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설겆이 시간이 기다려진다. 주님께서 나에게 진정한 낮춤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시려는 복된 시간이... 우리 죄인들을 위해 비천한 인간으로 오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온갖 희생과 수난을 감수인내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자신을 내놓으신 그 주님이 Kenosis(자기비하)의 신비를 가르치신다.
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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